전 - 현직 대통령과 불교 어떤 인연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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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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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서 술 마셨다 탈난 全… 사찰 종토세 없앤 ‘장로 YS’…

《이명박 정부와 종교계의 갈등이 수렁에 빠졌다. 기독교계와는 ‘불편’하고, 천주교계와는 ‘불통’이며, 가뜩이나 불만이 있었던 불교계와는 ‘불화’ 중이다. 그야말로 ‘3불(三不)’이다. 해당 종교의 언어를 빌리면 천주교와는 ‘냉담’, 기독교와는 ‘수난’, 불교와는 ‘악연’인 것이다. 불교계는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 예산 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사업 관련 예산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그럼에도 정권 핵심에서는 “불교계에 할 만큼은 했다”는 인식이 많다.최근 30년간 불교계와 역대 대통령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갈등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전 두환 노태우 대통령 등 군 출신 대통령과는 4, 5차례씩, 이후 대통령들과는 20차례 이상씩
만났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과 조계종 종회의원으로 불교계와 역대 정권의 대화를조율해 온 정휴 스님의 증언 등을 토대로 불교계와 역대 대통령의 인연 및 악연을 소개한다. 월주 스님은 “대통령은 종교를 공적(公的)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정부와 불교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휴 스님은 “대통령은 특정 종교의 대표자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지도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 전두환 (재임 1980∼1988) 집권초 ‘10·27 法難’으로 최대 악연
5공청문회 뒤엔 100일간 참회 기도

불교계와 악연과 인연을 동시에 갖고 있다. 1980년 ‘10·27 법난(法難)’ 때 150여 명의 승려를 연행, 구속하고 300여 명을 소환조사했다. 하지만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 은거해 사실상 ‘귀양살이’를 하며 빚을 졌다. 백담사에서 769일을 지내면서 주지 도후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어느 날 밤, 당시 월정사 주지 도명 스님은 산골짜기 작은 절로 귀양을 온 전직 대통령이 안쓰러워 술 한 병과 안주를 들고 백담사를 찾아갔다. 얼마 뒤 다시 찾아가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때 했다는 말이 걸작이다. “절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지난번 술 마시고 며칠간 심하게 설사를 했다. 부처님께 벌을 받은 모양이다.”

문민정부 출범 후 구속됐다 풀려나 국회 5공 청문회에도 서야 했던 전직 대통령은 이후 100일간 조계사에서 일요일마다 참회 기도를 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은 ‘10·27 법난’으로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되고 총무원장 직까지 물러나야 했던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였다. 기도하러 왔다가 월주 스님을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 책임이다.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월주 스님은 “알아본 결과 나와 종권 경쟁을 벌이다 밀려난 사람들이 국보위 사회분과위원회에 투서했다더라”면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명의로 ‘구국 영웅 전두환 장군 대통령 추대’ 지지 성명을 해달라고 했으나 세 번이나 일축했고, ‘대한불교 조계종’ 명의도 거절했던 것이 빌미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월주 스님은 “노무현 정부 시절 법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국방부 조사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최초 입안자와 집행자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노태우 (재임 1988∼1993) 車에서도 불경 들었던 독실한 佛子
대구 동화사 여래불 조성에 도움줘

독실한 불교 신자로 절 집에서 “오랜만에 불자 대통령이 나왔다”며 반가워했다. 모친이 대구 파계사 신도회장을 지냈고, 그 역시 학창 시절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출퇴근 때도 차 안에서 금강경 독송 테이프를 듣곤 했다. 대선 후보 시절, 총무원장 의현 스님과 함께 사저로 찾아간 조계종의 한 부장 스님이 “불교 신자임을 분명히 밝혀 달라”고 요청하자 “모든 국민을 상대로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표를 얻느냐. 천수심경을 누가 더 잘 외우는지 나와 겨뤄 보겠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대통령 재직 중 직지사 주지와 동국대 이사장을 맡고 있던 녹원 스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 인연으로 부인 김옥숙 여사의 법명을 딴 ‘만덕전(萬德殿)’이 직지사에 세워지기도 했다. 대구 동화사 약사여래불을 조성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 김영삼 (재임 1993∼1998) 지방 불교방송국 허가 등 통큰 지원
손명순 여사, 스님들에 큰절하기도


‘장로 대통령’임에도 불교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불교세가 막강한 부산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 법정 스님 등과 인연을 맺은 박세일 대통령수석비서관, ‘불교통’인 서석재 전 의원 등 불교계와 인연이 오랜 실세 참모도 많았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운동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그가 부산 수영만에 80만 청중을 모은 것도 이 지역 사암(寺庵)연합회의 힘이었다.

대통령 당선 직후 부인 손명순 여사가 조계종 총무원장실을 찾아 카펫 위에서 넙죽 큰절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에 롯데호텔에서 열린 축하법회에 내외가 참석했을 때도 YS의 뒤를 따르던 손 여사가 단하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해 스님들을 흡족하게 했다. 재임 중에는 부산 광주 대구 청주에 잇달아 불교방송국 개국을 허가했고 그때마다 월주 총무원장 스님에게 직접 전화로 알렸다. 특히 불교계는 YS가 사찰의 종합토지세를 면제해 준 것을 높이 평가한다. 여당인 신한국당에서 난색을 표시했으나 박세일 수석이 이상득 정책위의장을 압박했다고 한다. ‘각종학교’였던 승가대의 4년제 정규 대학 승격도 이때 이뤄졌다.

YS의 ‘문민정부’는 한때 불교계로부터 ‘청와대 안에 있는 불상을 없앴으며, 독립기념관 연못과 창덕궁 애련지의 연꽃을 뽑아 버렸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계종 스님 10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상 없음을 확인시켰고, 준설을 마친 연못에 다시 연꽃을 심었다. 월주 스님은 “친화력이 탁월했으며 불교에 대한 ‘정치적 이해’가 뛰어났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 김대중 (재임 1998∼2003)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에도 큰 관심
조계사 불교 역사기념관 건립 지원


할머니의 영향으로 본인은 오랜 가톨릭 신자이고, 부인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첫 아내의 부친, 즉 장인이 대흥사 대처승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본 절에 다니며 반야심경을 달달 외우는 등 어려서부터 불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대통령 재임 시 전북 전주 출신으로 당시 총무원장이던 고 정대 스님(1937∼2003)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씨와 이강래 정무수석비서관이 불교계와의 창구를 맡아 현안을 조율했다. 광복 이후 정치 사회사를 꿰뚫고 있는 정대 스님을 높이 평가한 DJ는 19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조계사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지을 수 있게 했다. 특히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DJ가 부전지를 붙여 반드시 예산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실무진에서 난색을 표시하자 박지원 비서실장의 코치를 받은 정대 스님이 직접 실무 과장 등을 찾아가 예산 항목을 신설했다고 한다. 이때 대표적인 백제 불교 유물인 익산 미륵사 복원 문제가 거론됐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월주 스님은 “독실한 천주교인이었지만 불교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뛰어난 분이었다. 불교계에도 전혀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 노무현 (재임 2003∼2008) 절에서 고시 공부하며 경전도 탐독
템플스테이 예산 재임중 393억 지원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으나 ‘냉담자’였으며, 절에서 1년 반 동안 고시공부를 하며 불교 경전을 탐독했다. 부인은 남편이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인 2002년 10월 1일 경남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에게 ‘대덕화(大德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고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다.

재직 당시 환경운동가와 스님들의 농성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 공사가 2년 넘게 중단됐다. 대통령 내외는 2003년 12월 22일 합천 해인사로 법전 종정 스님을 찾아갔다. 대통령과 종정은 서로 합장으로 예우했다. 대통령은 “나라 법도 법이라고 체면을 갖추라고 해서 큰절을 못 드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부인은 종정 스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대통령은 오찬 중 “사패산 터널 문제에 대한 공약을 못 지키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고, 불교계는 받아들였다. 재임 중 393억 원의 템플스테이 예산을 지원했다. 재임 시 세 번 해인사를 방문했고, 대(大)비로전 건립에 국고 30억여 원을 지원했다. 투신자살 후 이례적으로 해인사 승려 300여 명이 하안거를 깨고 나와 조문했다.

퇴임 전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지관 스님을 초청해 ‘생사(生死) 없는 도리’에 대한 법문을 듣는 등 불교계와 인연을 이어갔다. 지관 스님은 봉하마을에 세워진 묘비문을 썼다. 정휴 스님은 “절 집에서는 정서적으로 불교계와 가까우면서 서민 친화적이었던 그에게 적잖은 애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이명박 (재임 2008∼) 당선 직후까진 비교적 원만한 관계
취임 후 잇단 악재로 갈수록 멀어져


기독교 모태신앙이다. 서울시장 재임 당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백도웅 총무 등이 ‘형님처럼 모시던’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을 찾아가 진의를 해명해 가까스로 불심을 달랬다. 이런 인연으로 조계사 경내 역사기념관 주위 조경을 성의있게 해 주기도 했다. 대통령선거 당시 백담사 회주인 오현 스님 등에게 이런저런 ‘신세’를 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 직후 주요 사찰 주지스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 잘 부탁한다”며 챙겼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자신이 다니던 소망교회 인사 등 기독교인을 대거 등용해 편향 시비가 불거졌다. 특히 촛불시위 당시 경찰이 조계사 주변에서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탄 승용차의 트렁크를 열고 검문해 불교 홀대라는 논란을 빚었다. 대통령과 직접 관계는 없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수도권 대중교통정보시스템 ‘알고가’에서 수도권 사찰 표기만 누락되고, ‘전국경찰복음화 금식 대성회’ 포스터에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이 조용기 목사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게재된 사실 등도 불교계를 자극했다. 여기에다 얼마 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노출돼 불교계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불교계 안팎에서는 “아마도 역대 정권 중 불교계와 가장 불화(不和)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주호영 전 특임장관 등이 불교계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휴 스님은 “불교계는 기본적으로 MB가 기독교는 따뜻하게, 불교는 썰렁하게 대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월주 스님은 “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와 국격(國格) 상승 등의 업적이 있으나 화합의 ‘세기(細技)’가 좀 부족하신 것 같다. 아소카 왕이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후 불교를 권장하면서도 다른 전통 종교도 두루 포용한 사실을 참고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설 연휴 첫날,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실크로드와 둔황전’을 찾아가 ‘왕오천축국전’을 친견한 것은 불교계에 대한 관심과 화해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28일 청와대 불교신도 모임인 ‘청불회’가 경호처 강당에서 춘계 법회를 연 것이 불교계와 청와대 사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이날 조계종 측에서는 포교원장인 혜총 스님 등 4명이 참석해 법회를 주관했다. 조계종 종단 스님이 청와대에서 법회를 한 것은 2009년 현각 스님이 마지막이었다.

불교계는 지난번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MB보다는 박근혜 전 대표한테 더 호감을 갖고 있는 느낌이다. 월주 스님은 “박정희 대통령이 호국불교 수호 차원에서 불국사를 복원하고 팔만대장경 국역 사업을 지시하는 등 불교계를 배려한 점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휴 스님은 “박 전 대표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생시에 청담 스님을 잘 모시고, 도선사에도 많은 불사를 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캐리커처=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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