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60주년]“기습 상륙?… 北 알고도 당했다”

동아일보 입력 2010-09-13 03:00수정 2010-09-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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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뀌는 학계의 평가 ‘감쪽같은 기습’으로 알려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최근 많이 달라졌다. 각종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군 지도부는 이미 1950년 8월부터 인천지역에 방어지구를 만들어 유엔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저서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에서 인용한 인천 주둔 북한군 884부대에 하달된 전투명령(1950년 8월 31일)에는 “적은 다시금 군사적 모험으로서 인천 항구에 상륙 점령하고 계속 전진해 수도 서울을 점령할 목적으로…(미군은) 용유 영흥면 일대 함선들을 입항 체류하고 있는 바…”라고 적혀 있다. 9월 1일에는 인천방어지구사령부 명의로 “해안방어 진지 구축을 위해 개성 일대와 38선 일대의 설비를 강화 및 인천 부근으로 이동시켜라”라는 지시가 북한군 각 부대에 전달됐다.

지난해 한국에 소개된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저서 ‘콜디스트 윈터’에 따르면 당시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펼친다는 것이 너무 잘 알려져 일본 도쿄(東京)신문기자협회가 ‘상식 작전(Operation Common Knowledge)’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군의 이런 사전 예측과 방어태세 구축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연구자들은 △예상보다 대규모였던 유엔군 병력 △낙동강 전투의 교착으로 인한 북한군의 병력 부족 △인천 주민들로 구성된 자치유격대의 후방 기습 등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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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북한군 107연대장이 상부에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반동파의 치안대가 조직되어 아군만 발견하면 총살하고… 연락병도 파견하기가 곤란한 형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이 강조해온 ‘인민’으로부터 (북한 병사가) 고립되고 살해된 것은 (전쟁 중 남한 인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과장된 조작이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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