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군부에 12·12 항의… 보름만에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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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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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외교문서 공개

당시 美대사 박동진외무 만나 작통권 무시 병력이동에 유감
1979년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유신체제 갈등

외교통상부가 22일 공개한 외교문서 중 일부인 1979년 당시 김용식 주미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김 대사는 12·12사태 다음 날 리처드 홀브룩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요청으로 20분간 면담했다며 홀브룩 차관보가 12·12사태에 대해 밝힌 비판적 견해를 전달했다. 자료 제공 외교통상부
외교통상부가 22일 공개한 외교문서 중 일부인 1979년 당시 김용식 주미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김 대사는 12·12사태 다음 날 리처드 홀브룩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의 요청으로 20분간 면담했다며 홀브룩 차관보가 12·12사태에 대해 밝힌 비판적 견해를 전달했다. 자료 제공 외교통상부
1979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면서 발생한 ‘12·12사태’에 대해 미국이 한국 정부에 강력한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그해 12월 19일 박동진 외무부 장관을 만나 “미국 군부는 (12·12사태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불만은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 미 합참의장을 거쳐 백악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견해다”라고 미 군부를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공식적인 항의를 전달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또 “한국군이 미국 측과의 협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대와 사단병력을 자의로 이동해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를 지극히 훼손했다”면서 “미국 정부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민간정부와 상대할 것이며 민간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정부가 아닌 군사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22일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30년이 지나 공개한 1979년도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12·12사태 이후 한미 양국 인사들의 회고록 등을 통해 미국의 불만이 소개되긴 했지만 미국 측의 실제 항의 내용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이에 앞서 리처드 홀브룩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는 12월 13일 김용식 주미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홀브룩 차관보는 “12·12사태로 군 체제가 너무 급격하게 변동돼 군 지휘체계가 요동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김일성이 군사적인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행정부는 그러나 보름 만에 신군부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28일 박 장관을 다시 만나 “(미국이) 군부 지도자들을 배척하거나 경원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12·12 당시 신군부가 작전통제권에 관한 한미간 합의를 위반한 데 대한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과 미군의 불만은 아직 남아 있다”고 톤을 낮췄다.

한편 1979년 6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 유신체제 문제를 두고 심각한 갈등을 보인 사실도 22일 공개된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당시 한국 외무부가 국방부와 정책협의를 위해 작성한 정상회담 의제 문건은 ‘미 지상군 철수 시 군사력 균형과 전쟁억제전력 약화로 북괴가 군사 정치적 오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정착 시까지 철군을 중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철군 계획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후 카터 대통령은 미국 내 철군 반대 기류로 사실상 무력화되던 철군 계획을 재고하는 대신 한국 정부로부터 반정부 인사의 석방을 약속받았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 18만여 쪽에 이르는 외교문서 총 1270여 권으로 관련 문서는 서울 서초구 외교안보연구원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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