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黨에 막말, 이제 그만합시다”

  •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여야 의원모임 ‘일치 포럼’
“대변인 논평 78%가 비방”
용어순화 서약서 받기로

미디어관계법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하던 7월 20일. 국회 귀빈식당에 새 정치문화를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연구모임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 소속 여야 의원 10여 명이 긴급히 모였다. 더는 정치권의 막말 행진을 지켜볼 수 없다는 절박감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날 의견을 모은 포럼 소속 의원 24명은 동료 의원들을 향해 성명을 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단적인 말과 행위는 자제하도록 한다’ ‘다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여도 상호 적대감을 갖지 않도록 한다’ 등의 호소성 내용이었다.

실제 정치권에서 주고받는 막말의 수위는 도를 넘는 게 많았다.

포럼 대표인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이 1월부터 7월 6일까지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3당의 대변인 논평을 분석한 결과 정치 현안에 대한 논평 883건 가운데는 78.7%에 이르는 695건이 상대 당을 비방하는 내용이었다고 13일 밝혔다. ‘범죄자들의 해방구’ ‘패륜정당’ ‘정권 똘마니’ ‘지진아 정권’ 등 극단적인 표현도 많았다.

포럼이 동료 의원들을 향해 호소한 배경엔 정치용어의 순화가 상생의 정치문화를 앞당기는 첫 번째 과제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상대 당을 적(敵)으로 보는 정치문화가 정치용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실제 6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한나라당은 선의의 경쟁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이 됐다”고 말하자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은 “민주당은 정권타도 투쟁에 착수한 것”이라고 되받았다. 이에 민주당은 장 사무총장의 발언을 겨냥해 “재봉틀이 필요하나”는 취지의 거친 논평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포럼은 9월 정기국회에서 모든 의원을 대상으로 ‘막말 정치용어 금지 서약서’를 받을 예정이다. 각 당이 매달 1일을 ‘칭찬의 날’로 정해 상대 당을 칭찬하는 논평을 하나 이상씩 발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포럼 소속 의원들은 정치용어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달 포럼 정례회의에서는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낸 이계진 의원이 “이 의원의 유머 있는 논평은 훈훈했다”는 회원들의 말에 “그렇게 했더니 전투력이 없다며 빨리 물러나라고 하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상호비방의 대변인 문화를 바꾸겠다며 다른 정당 대변인과 떡볶이 미팅을 갖기도 했지만 대변인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 의원은 “정치용어는 결코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며 “동료 의원들과 ‘우리의 일상용어가 이렇게 험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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