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빠진 北체제 ‘3가지 뇌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57분



[1] 의사소통 단절 [2] 상황오판 우려 [3] 권력투쟁 격화

[1] 의사소통 단절 - 내부의견 조정안돼 주요 결정때 혼선

[2] 상황오판 우려 - 군부입김 세져… 강경론 득세 가능성

[3] 권력투쟁 격화 - 김정일 공백 장기화땐 체제균열 가속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병상에서 일어나더라도 과거와 같은 통치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북한 체제의 기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고지도자 1인에게 권한이 고도로 집중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능력 감퇴는 권력엘리트 내부의 의사소통과 이해관계 조정에 차질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일부 현상은 최근 북한 동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야 의원들은 11일 이로 인한 북한 내부의 균열 속도가 빨라져 북한 체제의 급변사태가 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제 내 의사소통 문제 불가피=김 위원장은 평소 보고를 매우 강조했다. 권력엘리트들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보고하도록 했다. 만약 보고가 누락될 경우엔 엄하게 질책했다.

최고지도자의 이런 스타일 때문에 의사소통 속도는 크게 떨어졌다. 한 탈북자는 “보고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동안 이미 상황이 변해 다시 보고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은 소통을 정지시키거나 더디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최근에도 북한과 미국의 핵 협상과 북한 내 언론 등을 통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북한이 완전한 핵 프로그램 검증 체계를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협상을 위한 ‘역(逆)제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북한 내부 의사결정 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외교 소식통들도 지난주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베이징에 모였을 때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나타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방침이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8일 중앙보고대회 등에서 낭독한 축하문이 과거 내용으로만 가득 찬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 당국자는 “핵 문제나 중요한 대외 공개 문건까지 챙겨온 김 위원장이 판단을 내려주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미숙한 결정과 권력 충돌의 가능성=김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검증한 이른바 ‘측근’들을 다수 주변에 두고 활용했지만 자신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을 우려해 철저한 ‘분할 통치’를 했다. 즉, 측근들에게 한정된 권한을 나눠주고 자신이 일대일로 직할하면서 측근들은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북한 국정의 전반을 모두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김 위원장 자신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런 정책 결정의 일관성과 단일성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유사시 최고지도자의 대체 인물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한국 등은 북한이 8월 26일 핵 불능화 조치를 중단한 것이 김 위원장이 아닌 군부의 자체적 판단이라는 데 우려하고 있다. 군부가 강경책을 유지할 경우 협상 상대방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권력엘리트들이 정치적 권력을 둘러싸고 투쟁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최근 계간 ‘시대정신’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일이 장기간 병중에 있기라도 한다면 권력투쟁은 극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력엘리트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암투를 벌일 가능성도 크다. 김 위원장은 국민 경제와 별도로 국가 내 희소 자원의 운영권을 권력엘리트들에게 나눠 줘 충성을 유도하고 이익의 일부를 헌납 받아 통치자금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수령 경제’를 운영했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당 경제와 군 경제를 합한 수령 경제의 확실한 규모와 운영 원칙 등은 오로지 김 위원장만이 안다”며 “김 위원장이 의식이나 소통 능력을 잃을 경우 ‘수령의 재산’을 둘러싼 엄청난 암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체제 위기 가능성과 정부 대비책 시급=김 위원장의 통제를 벗어난 의사소통 저하와 이해관계의 충돌은 일정한 역사적 계기에 체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내파(內破) 또는 강대국들의 오해에 기인한 외파(外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북한에 돌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한 대응체계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황진하 제2정조위원장을 상황실장으로 해 면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북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도 이날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안은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 활발하게 논의되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체된 상태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가 1990년 마련한 ‘평화계획’은 북한의 체제가 ‘변화’할 때와 ‘붕괴’할 때를 나눠 각각에 대해 한국 정부의 행동계획을 다뤘다. 북한이 체제 변화를 추구할 때는 민주화를 지원하고 체제 붕괴가 예상되면 통일에 대비한다는 것이 큰 뼈대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미연합사는 유사시 한미연합군 작전 개념계획인 작계5029를 만들었고 한국 정부는 군 계획 이외의 행정계획을 ‘충무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두 계획 모두 노무현 정부 때 논의가 거의 중단됐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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