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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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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24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한 ‘행정형벌 합리화 방안’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됐던 법률 시스템을 대폭 손질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에 장애가 되는 법률 시스템 중 대표적인 것으로 △종업원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잘못이 없는 기업주나 법인까지 처벌을 받는 양벌주의 △운전면허증을 휴대하지 않았다고 형벌을 부과해 전과자를 양산하는 식의 과도한 처벌 규정을 지목했다.
○무과실 책임주의에서 과실 책임주의로
양벌규정은 건설 등 기업 활동과 밀접한 분야의 424개 법률에 규정돼 있다.
정부는 양벌규정이 있는 법률 가운데 건설산업기본법 등 무려 392개 법률을 과실이 있을 때만 책임지는 ‘과실 책임주의’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검찰은 이런 양벌규정에 따라 종업원이 범죄를 저지르면 기업주와 법인이 종업원의 관리 감독을 잘못했는지에 관계없이 종업원과 함께 기소했고 법원도 이를 대부분 인정해 기업이 사실상 무과실 책임을 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양벌규정에 의해 법인을 처벌한 건수는 2005년 2만7481건에서 2006년 3만4887건, 지난해 3만6926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이에 따라 양벌규정이 기업 활동의 주요 제약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양벌규정을 과실 책임주의로 전환함에 따라 기업주와 법인에 대한 처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양벌규정이 많이 적용됐던 건설 및 유통 관련 법률 등을 종업원이 위반했을 때, 기업주가 관리 감독 의무를 다했다면 법인과 기업주의 형사 책임이 면제된다.
법무부는 또 관세법,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15개 법률에서 양벌규정에 의해 기업주에게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돼 있는 것을 과잉처벌로 보고 개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종업원 범죄의 업무 관련성 범위의 제한이 없는 의료법 등 7개 법률은 ‘업무에 관한’ 범죄로 한정해 양벌규정을 적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경미한 범죄는 과태료 중심으로
행정형벌을 과태료로 전환하는 규제안은 총 151건.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경우, 특정한 섬 안에서 야영한 경우 등 84건에 대해서는 벌금과 동일한 액수의 과태료로 전환된다.
과태료(過怠料)는 형벌에 속하는 벌금과 달리 행정기관이 법령 위반에 대해 제재하는 수단이다. 과태료는 형벌이 아니어서 전과 기록으로 남지 않는 점이 벌금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기존 벌금보다 과태료가 상향 조정되는 것도 있다. 현행 도로법에는 운전자가 화물 과적차량을 운전하거나 사업주가 이를 지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과태료로 바뀌는 대신 500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된다. 무조건적인 형벌보다는 과적 운행을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을 환수하는 제재를 통해 행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부는 양벌규정의 개선과 과실 책임주의 도입으로 법인의 벌금 부담이 170억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행정사범 감소에 따른 수사기관과 법원의 업무 감소로 527억 원을 절약하는 등 이번 방안으로 연간 약 161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벌규정의 개선(6277명)과 행정형벌의 과태료 전환(약 9만9000명)으로 연간 약 10만 명의 전과자가 감소하고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경미한 위반땐 영업정지 대신
경고-시정명령으로 기회 부여 ▼
■ 법제처 행정제재 합리화
법제처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과도한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의 감경을 뼈대로 한 ‘행정제재 처분 합리화’ 방안을 보고했다.
법제처는 업체의 경미한 위반행위에 대해선 곧바로 영업정지나 허가취소를 하는 대신 경고나 시정명령을 내려 자발적으로 시정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예컨대 3년마다 하도록 돼 있는 등록기준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시정기회도 없이 바로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법제처의 판단이다.
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때도 위반행위 시정 때까지만 영업정지 효력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법제처는 이와 함께 법령별로 행정처분의 가중·감경 기준이 달라 기업들이 불이익을 보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 처분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우선 결혼중개업 관리법 시행규칙,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 시행령 등 147개 법령을 대상으로 업무정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가중 혹은 감경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위반행위가 두 가지 이상일 때의 제재 처분도 일원화한다. 같은 시기에 2건 이상의 위반행위가 적발된 때 가장 중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만 처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2건 이상의 영업정지에 해당하는 사항이 적발된 경우 가장 무거운 위반행위를 기준으로 그 영업정지 기간의 절반까지만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행정제재 처분을 개선할 예정인 법제처는 “합리화 방안이 계획대로 시행되면 기업과 자영업자의 영업정지 기간 감소 등으로 연간 약 6000억 원의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