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약속을 어긴 북한의 전력(前歷)이 우려를 키운다. 북한은 미국과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어기고 은밀히 핵 개발을 계속해 2차 핵 위기를 불렀다. 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을 조롱하듯 재작년 10월엔 핵실험까지 했다. 핵 프로그램 신고도 작년 말까지 하겠다던 약속을 반년이나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생산량은 미국의 추정치인 최고 60kg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을 통해 숨긴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확정되기 전 철저한 검증을 다짐하며 “북한의 협력 수준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내 강경파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하지만 그 의지를 믿고 싶다. 북의 신고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잭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는 “북한은 핵 폐기 3단계에서 경수로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만 해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면서 핵무기의 명세를 밝히지 않은 것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여 더 찜찜하다. 그래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어제 유감이라고 했을 것이다.
6자회담의 목표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다. 북의 선전술에 속아 핵 폐기가 가시화되지도 않았는데 경계심을 풀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용도 폐기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이벤트와 핵무기가 빠진 핵 프로그램 신고는 핵 폐기까지 아직도 먼 길이 남아 있음을 다시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