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나도 얘기 좀…” 孫대표 “다 듣고 하시라”

  • 입력 2008년 5월 21일 03시 14분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20일 청와대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통령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손 대표, 이기우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차영 민주당 대변인. 이종승 기자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20일 청와대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통령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손 대표, 이기우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차영 민주당 대변인. 이종승 기자
■ 2시간동안 날카로운 신경전

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린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와의 단독회동은 초반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본격적인 현안 논의에 들어가서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날 회동에서 가시적 합의나 성과는 없었지만, 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 직접 대화의 물꼬를 틈으로써 ‘소통의 채널’을 넓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FTA 처리해 줘야” vs “쇠고기 파동 사과와 재협상부터”=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두 사람은 최대 쟁점인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검역주권’의 명문화 등을 추가로 보완했음을 강조했으나, 손 대표는 “이성적, 합리적 판단 못지않게 국민 생각도 중요하다”며 ‘국민정서법’을 내세워 ‘재협상’ 주장을 접지 않았다.

손 대표의 재협상 요구에 이 대통령은 “손 대표도 대통령을 해보면 알 것이다. 국제 관행상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설득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국 내 도축장 조사권이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수입 금지 등 세부 사안을 놓고 팽팽한 긴장이 감돌자 이 대통령은 “마치 우리가 (농림수산식품부) 축산국장처럼 말하고 있다. 너무 디테일(자세)하다”고 지적했고, 손 대표는 “그게 키포인트다”라고 응수했다.

쇠고기 문제와 연계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 “한미 FTA가 타결되면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라고 밝혔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17대 국회 내 처리를 거듭 당부했다.

하지만 손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일관되게 한미 FTA 비준에 찬성 입장이었다”면서도 “지금은 쇠고기 협상 때문에 FTA 문제를 꺼내기 어렵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북한과 막힌 게 아니다” vs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 정책 긍정해야”=대북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며 손 대표와 상당히 공감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도 회동 후 측근들에게 “오늘 얘기가 잘된 것은 남북 문제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

또 이 대통령은 “미국의 50만 t 대북 쌀 지원에 한국 측의 노력도 들어가 있다”고 소개했으며 “흔히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함)을 얘기하지만 미국 북한 간의 대화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6·15정상회담 등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긍정적인 정책을 인정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하자 이 대통령은 “우리가 꽉 막힌 게 아니라 새 정부 들어 조정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문제 등에 대해서는 물밑으로 대화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에서는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손 대표의 소송 취하 요청이 없었다는 것이 양측 설명이다. 당초 15분여 동안 배석자 없이 독대가 있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이 대통령과 손 대표 간 독대는 없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민주당 차영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밝혔다.

▽‘쓴소리’ 손 대표 vs ‘경청’ ‘예우’ 이 대통령=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손 대표는 작심한 듯 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손 대표의 발언이 길어지자 이 대통령이 “나도 얘기 좀 하자”고 했으나 손 대표는 “쇠고기 문제, 교육, 서민, 북한 문제 얘기 다 한 뒤에 말씀하시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

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손 대표가 그동안 수렴한 국민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했고, 이 대통령은 손 대표를 ‘전형적으로 소신을 가진 정치인’으로 평가하며, 손 대표의 의견을 주로 경청했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회담 이후 충북 청주에서 열린 민주당 충북도당 재·보선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의 이른바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서 “(실제로는)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같은 자세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한편 양측의 합의가 결렬됐다는 평가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그러다가 내일쯤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예단을 자제해 달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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