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는 동포 도와야” “체제 모순부터 고쳐야”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법륜스님 (좋은벗들 이사장) - 정광민 박사 (안보전략硏) 대담

《북한의 식량난을 둘러싼 국제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은 식량 50만 t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사실상 확정하고 12일(현지 시간) 앞으로의 계획을 한국 당국자들에게 설명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식량 지원을 공식 요청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식량 지원을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문제가 국제정치화되는 가운데 본질이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북한 식량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식량 부족을 재생산하는 구조적 모순은 없는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 지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동아일보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온 국제난민지원센터 ‘좋은 벗들’ 이사장 법륜 스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정광민 박사와 함께 올해 3월 24일과 4월 15일, 5월 12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해결 방안 등에 관해 토론했다.》

○ 곡창지대, 농민들까지 식량난 호소

▽법륜 스님=이번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징조는 곡창지대의 농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최근 아사자 소식이 나온 황해북도는 북한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동북쪽 공업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평양 시내 간부들이 사는 곳에도 3월부터 배급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원인은 1차적으로 식량의 부족이다. 2006년에 홍수 때문에 식량 생산이 줄었다. 게다가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 실험을 해서 외부 식량 지원이 줄었다. 북한은 이로 인한 2007년 아사 위기를 군량미를 풀어서 넘겼다. 그러나 2007년에 홍수로 또다시 식량 생산이 줄었고 올해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주요 원인이다. 올해는 비축미도 부족하다.

▽정광민 박사=1990년대 수십만∼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때와는 상황이 어떻게 다른가. 당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법륜=1990년대 아사 사태 당시에도 종자가 없다고 난리였다. 씨앗까지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볍씨가 부족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배급제에만 의존해 정부의 배급이 중단되자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지금은 시장 등에서 알아서 먹고사는 시스템이 번져 당시보다는 나을 것이다. 과거에는 수돗물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집집마다 우물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자력갱생 역시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

○ 절대량의 부족 때문인가, 잘못된 체제 때문인가

▽정=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 필요한 하루 식량은 총 1만 t으로 1년에 365만 t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텃밭 등에서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하는 인민이 늘어났다. 혹시 인도적 지원단체들이 북한의 식량 부족 현황이나 식량난 실태를 과장하는 것은 아닌가. ‘좋은 벗들’도 2007년에 200만 명 아사 위기설을 말하지 않았나.

▽법륜=200만 명이 취약계층이라고 한 것이 200만 명 아사설로 와전됐다. 주민 개개인이 얼마나 식량을 비축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결정적으로 북한 당국이 군량미를 풀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수해로 곡물 생산이 25%가량 줄고 국제 곡물 가격도 3배 이상 뛰어 올해 상황은 199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이 식량난을 초래하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는 권력을 가진 정도에 따라 식량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된다. 국내의 희소한 자원과 무역을 통한 외화 획득 권한 등을 독점하고 있는 ‘수령경제’는 군사력 증강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치품 구입 등 비효율적인 부분에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70%를 넘는 나라에서 해마다 식량난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법륜=북한 지도부에 잘못이 있다. 그러나 아사라는 벌을 받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죄 없는 주민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북한 정부를 비판해야 하지만 당장 굶어죽고 있는 주민들은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인도주의 정신 아닌가.

▽정=북한은 국제사회가 지원한 쌀을 권력자들이나 군인 등에게 먹인 뒤 힘없는 인민들을 상대로 시장에서 쌀장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10년 이상 인도적 지원을 했지만 취약계층의 식량 획득 능력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 체제 변화와 취약계층 지원에 노력해야

▽법륜=우리는 죽는 사람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이 있지만 북한 지도자들은 체제 유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식량난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인들이 ‘왜 북한에 못 퍼주어 안달이냐’거나 ‘이참에 북한의 잘못을 바로잡자’고 말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나도 화가 난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 문제에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도덕적인 문제를 부른다.

▽정=인도적 지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독재를 해도 좋다. 왜 국민을 굶기고 죽이느냐는 것이다. 인민들을 먹고살게 하자는 것이 정치다. 자기 국민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정권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먹는 쌀을 통치에 활용할 것인가.

▽법륜=그래서 다양한 전술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도 어서 대북 지원에 나서라. 차관으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무상으로 지원해서 국제 수준의 모니터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인구 현황과 식량 부족 정보를 얻어서 가능한 한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배달해 주겠다고 주장하면 북측도 받아들일 것이다.

▽정=국제사회는 식량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식량 생산을 실질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도시의 식량 가공과 유통업자들을 육성하는 것도 좋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통해 산업을 일으켜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비핵·개방 3000 구상’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 법륜스님은

1953년 울산에서 태어나 1969년 불가에 입문했다.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불교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아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대북 식량 긴급구호 활동과 나진-선봉지구 및 청진 등지의 어린이 보육사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 국제난민지원센터 ‘좋은 벗들’과 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 정광민 박사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2005년 일본 나고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북한 기근의 정치경제학: 수령경제·자력갱생·기근’(2005년)을 통해 1990년대 북한 기근이 북한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정리=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