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8주년]4강대사에게 듣는다<2>시게이에 주한日대사

  • 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3분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는 인터뷰 말미에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양국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데서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것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봐 왔다”고 말했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가끔 가다 등을 돌리는 두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의 교류’를 늘리는 것이며, 그럴 만한 기반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김경제  기자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는 인터뷰 말미에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양국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데서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것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봐 왔다”고 말했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가끔 가다 등을 돌리는 두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의 교류’를 늘리는 것이며, 그럴 만한 기반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김경제 기자
요즘 일본대사관은 한일 간의 문화교류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수요도 늘었지만 파워도 커졌기 때문이다. 시게이에 도시노리 대사(가운데)가 올해 1월 서울 종로구 운니동 일본공보문화원에서 열린 일본문화체험교실 행사에서 한국 어린이들과 떡메를 치고 있다. 사진 제공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요즘 일본대사관은 한일 간의 문화교류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수요도 늘었지만 파워도 커졌기 때문이다. 시게이에 도시노리 대사(가운데)가 올해 1월 서울 종로구 운니동 일본공보문화원에서 열린 일본문화체험교실 행사에서 한국 어린이들과 떡메를 치고 있다. 사진 제공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韓-日은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가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일관계를 얘기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실제로는 가까워져도 겉으로는 멀리 있어야 한다는 주문처럼 들린다. 그러나 요즘 이 말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당연하지만 한국에 부임한 지 6개월을 갓 넘긴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주한 일본대사도 그렇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두 나라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교류, 특히 청소년 및 학생 교류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담=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이명박 대통령이 4월에 일본을 방문한다. 일본은 이 대통령의 방일 의미를 어떻게 보나. 예상되는 주요 의제는….

“이 대통령의 이번 방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미래지향적인 일한(日韓) 신시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성공적인 방일이 돼야 한다. 두 정상은 2월 25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셔틀외교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또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열어가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교류와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북한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국제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일한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비즈니스 대화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 교환이 이뤄질 것이다.”

- [4강 대사에게 듣는다]<1>버시바우 주한 美대사
- [4강 대사에게 듣는다]<2>시게이에 주한日대사
- [4강 대사에게 듣는다]<3>닝푸쿠이 주한 中대사
- [4강 대사에게 듣는다]<4·끝>이바센초프 주한 러 대사

―한일 셔틀외교가 재개됐지만 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양국 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적 조치로 한일 FTA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왜 중단됐느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시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일한 FTA, 일본에서는 (FTA 대신) 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을 어떻게 재개하는가이다. 일본의 EPA는 경제협력은 물론이고 좀 더 넓은 분야에서 협력의 틀을 만들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한 FTA는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경제협력관계를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제3국에서 한국과 일본이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선 가능하면 이른 시일 내에 협상 재개를 검토하고 싶어 한다.”

―대북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일본은 일관되게 비핵화와 납치문제 등을 해결하고, 동시에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일본과 북한이 국교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이는 국제적 협력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6자회담은 중요한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 미국 등을 포함한 관계국들과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런 틀 속에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일본은 납치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북한 관계가 진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7월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이명박 대통령도 초대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올해는 국제경제 문제와 함께 아프리카 개발 및 기후변화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중요한 경제대국으로서 세계적인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협력 없이는 문제 해결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 이러한 시대적 인식을 바탕으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이 대통령을 초청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주로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출석하게 될 것 같다. 좋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 방안은….

“유가급등과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협력이 중요하다. 일한 양국도 자기 국가만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개월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양국 정부 간에 여러 차원의 협력관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 모두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얘기하고 있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정부차원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서 배우면서 미래를 위해 전진해야 한다. 첫째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둘째는 국민 차원의 상호 이해와 협력관계를 한층 더 넓혀 나가야 한다. 양국이 젊은이와 학생들의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부터 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됐다. 이것을 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고 싶다. 양국은 이미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일관계는 1990년대 이후 한류(韓流)와 일류(日流) 등 문화교류가 주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화교류는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대사로서 이를 더 가속화할 방안이 있다면….

“공감한다. 이제 국가의 힘에서 문화의 힘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고, 문화적인 이해와 교류가 국가 간 교류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시대가 왔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 간 청소년 교류를 강화하고자 한다. 일본은 작년부터 한국의 청소년을 매년 1000명씩 초청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올 1월 첫 그룹이 일본을 방문했다.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확대하는 것도 검토하겠다. 지방자치단체끼리의 교류도 중요하다. 현재도 양국의 지자체 교류는 아주 활발하다. 한국의 여객기가 일본 국내의 26개 공항에 취항하고 있다. 자매결연을 한 도시도 128곳이나 된다. 또한 작년에 5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두 나라를 왕래했다.”

대사라는 게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국익을 위해 자국과 주재국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할 때가 많은 어려운 자리다. 한국 주재 일본대사는 특히 더 그렇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양국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되는 예기치 않은 돌풍에 휩싸이면 꼼짝 못하기 때문이다. 시게이에 대사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농담 삼아 “가능하면 작게 써 달라”며 웃었다. 그의 말에서 한국 대사로서의 ‘애로’가 전해졌다.

정리=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

△히로시마 현 히가시히로시마 시 출생(63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부 졸업

미국 하버드대 국제문제센터(CFIA) 연구원

△1969년 외무공무원채용 상급시험(외무고시) 합격,

1970년 외무성 입성

△대양주과장(1984) 오부치 내각 관방장관비서관(1987년) 유엔 주재 일본대표부 공사(1993년) 중근동·아프리카국 심의관, 경제국 심의관(1995년) 주미 일본대사관 특명전권공사(2000년) 중근동·아프리카 국장(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2003년) 오키나와담당 대사(2006년)

:도야코(洞爺湖) 정상회의

7월 7일부터 3일간 홋카이도(北海道) 서남쪽에 있는 칼데라호수인 도야코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말한다.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러시아 등 8개국이지만 최근에는 의장국이 재량으로 비회원국 정상을 초청하고 있다. 올해 의장국인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2월 이명박 대통령을 도야코 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국이 G8 정상회의에 초청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8 정상회의는 오일쇼크를 계기로 1975년 창설됐다. 각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격의 없이 국제사회가 직면한 경제 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골목길 산책-수제비 즐기며 한국어 공부도 열심▼

시게이에 대사는 인터뷰 도중 서울 성북구 성북동 대사관저 근처의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거리를 이곳저곳 걸으며 사람들을 살펴보는 게 재미있다”는 설명이었다.

사람만이 아니다. 사람을 지배하는 ‘인식’도 관심사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는 ‘2008년 신년사’에서 “계절의 변화를 사랑하는 문화나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 자세는 의외로 한일이 공통적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독특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달에는 백제문화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과 공주시를 찾을 계획이다. 시게이에 대사는 “그런 기회를 통해 도자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한국 음식으로 수제비와 누룽지 백숙을 꼽았다.

주미공사를 지낸 그의 외교관 경력은 ‘미국통’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히로시마(廣島)는 조선통신사가 오갈 때 꼭 머물던 지방이다. 한국과 일본의 옛 교차로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 부임하기 전 고향을 찾아 조선통신사의 자취를 둘러봤던 얘기를 대사관 홈페이지의 ‘대사칼럼-중학동 산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시게이에 대사는 요즘 한국어 공부도 열심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오늘 아침에도 수업이 있었다. 한국어는 어렵지만 열심히 배워서 동아일보 기사까지는 몰라도 제목 정도는 (한글로) 읽고 싶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4강 대사에게 듣는다]〈1〉버시바우 주한 美대사
- [4강 대사에게 듣는다]〈2〉시게이에 주한日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