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원장 후보자 임명 지연… 흔들리는 국정원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국가정보원의 정보원(IO·Intelligence Officer)인 A 씨는 지난주 초 서울 시내 모처에서 대통령실의 한 비서관과 만나 정부 고위직 인사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나 A 씨는 이 내용을 국정원 공식 라인에는 정식으로 보고하지 않았다. 보고 내용이 간부들에 의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 씨는 통화에서 “요즘 국정원 조직이 엉망이 됐다”며 “간부들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고 일반 직원들도 민감한 정보는 잘 보고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해 ‘삼성 떡값’ 수수 의혹이 제기되면서 증인 채택 문제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뤄지지 못해 국정원장 임명이 늦어지는 사이 국정원 조직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발탁된 간부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혈연, 지연, 학맥을 동원해 현 정권 실세들에게 줄을 대고 있다. 일반 직원들도 조직에 불어 닥칠 ‘인사 태풍’의 여파를 주시하며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정원장은 정식 임명되지 않으면 ‘보안 승인’이 나지 않아 1급 비밀을 다룰 수 없고, 청사 출입도 불가능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23일까지는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능력이 없는 인사들이 실세들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발탁된 경우가 많아 새로운 변화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핵심 간부들의 조직 장악이 느슨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국정원 관계자도 “현 시점에서 민감한 A급 정보를 잘못 보고할 경우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조심하고 있다”며 “정권 교체 이후에는 조직원 개개인이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실세들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원장 후보자가 삼성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 후보자가 조직을 잘 건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직원들이 말은 못하고 눈만 깜박이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국정원의 일부 조직을 통폐합하기로 하고 이달 중 대대적인 인사 쇄신을 통해 국정원의 기능을 살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조직 안팎의 사정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정권 교체기에 조직이 동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국정원은 그나마 타 부처에 비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金후보자, 국정원 安家서 청문회 준비▼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휴일인 9일에도 서울시내 모처에 마련된 국정원 안가 사무실에 나와 오후 6시경까지 국회의 인사청문회 속개 일정을 파악하고 삼성그룹 떡값 수수 의혹 등에 대한 청문회 답변 준비를 했다.

김 원장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회가 김하중 통일부, 이만의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만 10일 청문회를 열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크게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는 측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청문회가 열리길 바라고 있는데 의원님들이 ‘더 바쁜 정치 일정들’ 때문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김만복 전 원장의 낙마에 이어 자신의 임명까지 늦어지며 국가 정보기관 수장 자리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고 조직 내부 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국가를 위해 좋지 않은 일”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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