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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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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직원들 “靑서 미루는 바람에 모양만 나빠져”
■ 청와대, 김만복 국정원장 사표 뒤늦게 수리
청와대는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을 끝까지 감싸는 모습이었다. 천호선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 내내 김 전 원장이 유출한 ‘평양 대화록’에 대해 ‘해명자료’란 표현을 썼다. 대통령선거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김 전 원장이 방북한 것을 두고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북풍(北風)’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김 전 원장이 ‘해명’을 위해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방북 대화록을 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로 들렸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이 4월 총선에 출마한다는 설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루머에 시빗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총선 출마자 사퇴 시한(9일) 이후로 사표 수리 시기를 잡았다”고까지 했다.
청와대는 당초 김 전 원장이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의를 표명했을 때엔 즉각 사표를 수리할 태세였다. 정보기관장으로서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한 비판이 무성했고, 이를 의식한 듯 즉각 청와대는 김 전 원장의 행위를 “부적절한 업무처리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규정하며 “거취를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호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김 전 원장이 기자회견 이틀 전인 지난달 13일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 거취 문제를 언급하자 “스스로 책임 있게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사실상 사의 표명을 독촉했다.
하지만 김 전 원장의 사의 표명 회견 다음 날부터 청와대 기류는 ‘버티기’로 급변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이 ‘국가기밀 유출’ ‘국기 문란 행위’ ‘북풍 공작’ 등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때문에 김 전 원장이 노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24일)까지 함께 갈 것이란 예측이 나왔지만 청와대가 김 전 원장의 대화록 유출 행위를 ‘부적절한 업무 처리’라고 공개 인정했던 만큼 마냥 버틸 수만은 없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선정 논란과 관련해 ‘경질’된 김신일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사건이 결정타가 됐다. 김 전 부총리의 사표가 제출된 지 만 하루도 안 돼 수리되면서 ‘이중 잣대’란 비판이 터진 것. 오기로 버티던 청와대는 결국 총선 출마설의 ‘때’를 벗겨주기 위해 사표 수리를 늦췄다는 코미디 같은 변명까지 내놓았다.
김 전 원장의 사표가 우여곡절 끝에 27일 만에 수리됐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원장이 유출한 대화록을 ‘국가기밀’이라고 판단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게 됐고, 그만큼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업무처리 방식에 대한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5시경 국정원에서 열린 김 원장의 퇴임식에는 과장 이상 간부들과 몇몇 팀장 등만 참석했다고 한다. 김 원장의 퇴임을 지켜본 국정원 직원들은 청와대를 원망하는 분위기였다.
한 중견 간부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퇴임 때까지 김 원장과 함께 가지 못할 바에야 사의를 표명했을 때 사표를 수리했어야 모양새가 좋았다”고 비난했다. 다른 간부는 “노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누차 강조했지만 정치적 중립은커녕 조직의 위상과 권위만 훼손됐다”며 “부적절한 처신을 해온 김 원장의 불명예 퇴진 때문에 국정원 출신이 수장으로 가는 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