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지역주의 청산 조짐 고무적… 네거티브엔 넌더리”

  • 입력 2007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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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지역 신문 편집국장 - 정치부장들이 말하는 대선 민심

《제17대 대선 레이스가 드디어 끝났다.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역별 선호 현상은 여전했다. 하지만 역대 어느 대선보다 지역감정이 엷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전국 각 지역에 파견된 본보 대선특별취재단이 현지 지역 신문의 편집국장과 정치부장의 분석을 바탕으로 지역별 대선 민심과 판세를 점검해 본다.》

■경기 인천“李지지층 견고… 흐름 변화 안보여”

인천 경기 지역은 서울과 함께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정치적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의 강세지역인 대구 경북(KT) 지역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곳이다.

검찰의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전국적으로는 ‘수긍’보다는 ‘불신’이 오차범위 안팎에서 높았지만 이 지역 유권자들은 오히려 오차범위 안팎에서 검찰 수사결과를 신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건은 대선 막판에 터진 이른바 ‘BBK 동영상’. 이 지역 이명박 후보 지지층의 ‘충성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만 동영상 공개 후 이탈 여부와 정도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부일보 하태호 정치부장은 “동영상 파문 이후에도 ‘이명박 대세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편”이라며 “이 지역은 토박이 유권자 중심으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층이 견고한데 아직까지는 그 흐름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일보 강해인 정치부장은 “연령대별로는 20, 30대에서 기권표가 많을 것으로 보이고 40대에서는 뚜렷한 성향이 안 나타나고 있다”며 “50, 60대에서는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젊은 유권자가 예상보다 더 많이 기권한다면 이는 대선 막판에 BBK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혐오감이 확산된 영향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후보 가운데 찍을 마땅한 후보가 없다”는 정치적 체념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최근까지의 지지율 추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강 부장은 “역대 대선에서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이 결국 대선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영상취재 : 신세기 기자


영상취재 : 신세기 기자


영상취재 : 정영준 기자


촬영 : 신원건 기자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대전 충청“BBK 따라 李-昌사이 민심 출렁”

대전 충청지역 신문 정치부장들은 이번 대선 특징으로 지역감정이 거의 없어진 반면 2002년 ‘행정수도 건설’ 같은 지역 표심을 가를 정책공약도 없다는 점을 꼽았다.

중부매일신문 김영철 정치부장은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를 빼고는 뚜렷한 지역 공약이 없어 주민들이 대선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슈 공약이 없다 보니 지역 민심은 BBK 사건에 따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대전일보 김시헌 정치부장은 “BBK 사건 수사결과 발표로 이명박 후보에게 기울었던 표심의 일부가 BBK 동영상 공개로 이회창 후보 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이탈 표가 정동영 후보 쪽으로 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인제 후보가 부진한 데다 심대평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단일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이명박 후보 지지 등 지역 출신 정치인의 행보가 표심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도 특징이다.

충청타임즈 남경훈 정치부장은 “이념, 지역감정, 공약이 아니라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감이 지역 표심의 가장 큰 결정 요인”이라며 “이명박 후보의 우세가 지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전=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청주=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부산 울산 경남 “1, 2위 큰 격차… 黨보다 인물 택해”

부산 울산 경남지역 신문 정치부장들은 이번 대선에 대해 ‘지역색은 엷어지고 쟁점만 부각된 선거’라고 분석했다.

경남일보 한중기 정치부장은 “2002년 대선 때는 지역 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있었지만 한나라당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기보다는 경제문제 등의 이유로 이명박이라는 인물 자체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 12일 이전 실시된 지역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40%를 넘는 지지율로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제신문 고기화 정치부장은 “지난번 대선 때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지지층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신념이 일치해 지지한다기보다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보니 차선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의 지역 특징은 정책 경쟁보다 BBK 사건 같은 쟁점이 선거 기간 계속 부각되면서 선거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경상일보 박정훈 정치부 차장은 “자기 이름보다 BBK를 먼저 내세우는 후보가 많았다”며 “BBK 동영상 공개 이후 부동층은 물론 지지층에서조차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부산=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대구 경북 “차선의 선택… 정치 불신감 심해져”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고, 지역 공약은 눈 씻고 봐도 없고….”

대구 경북지역 신문 편집국장과 정치부장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주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표심은 이른바 ‘이명박 대세론’이 강하지만 적극적인 지지가 아닌 차선의 선택이라는 분석이 많다.

매일신문 정인열 정치부장은 “처음에는 정권교체 열기가 강했지만 점차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논란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며 “마땅한 대안이 없어 차선책으로 이명박 후보를 찍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는 게 지역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책 대결이 사라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영남일보 김신곤 정경부장은 “그나마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동남권 신공항 추진 공약 등은 각인됐지만 다른 후보들의 지역 대표공약은 뭔지 모르겠다는 주민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종전에 대선 결과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지역주의는 완화되고 있다. 경북일보 정정화 편집국장은 “맹목적 지역주의보다는 지역 발전을 생각하는 전략적 투표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외지인이 많은 포항 구미에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이런 변화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대구=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광주 호남“범여 분열… 정책 실종… 최악의 흥행”

광주 전라지역 신문 정치부장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 공약은 없고 정치적 쟁점만 부각돼 사상 최악의 흥행 실적을 보인 대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북일보 권순택 정치부장은 “사상 처음으로 전북 출신 대선 후보가 나왔지만 선거 열기는 역대 대선 중 가장 낮았다”며 “이번 대선은 지역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커녕 대화 주제에도 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1, 2위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진 데다 상대 후보를 헐뜯기 위한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유권자들이 식상한 탓이라는 것이다.

광주일보 오주승 정치부장은 “범여권의 분열로 지역 유권자들이 응집력을 보일 수도, 보일 필요도 없게 돼 버린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싹쓸이’로 표현되던 호남 지역 표심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진 점은 이번 대선을 통해 달라진 특징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역 신문이 발표한 막판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는 40∼50%대 지지율로 1위를 달렸지만 역대 대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도 두 자릿수를 유지해 왔다.

전남매일 김우관 정치부장은 “한 후보가 90% 이상을 득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지역구도가 약화되고 있는 긍정적 조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광주=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강원 제주 “경제 후보에 솔깃… 李일찌감치 1위”

강원 지역은 전국 표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후보 ‘대세론’이 강한 편이다. 이회창 후보가 ‘실향민 정서’를 내세워 한때 2위에 올랐지만 BBK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정동영 후보가 2위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김인호 정치부장은 “BBK 동영상 공개 후에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거의 흔들림이 없다”며 “다른 후보들 중에는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역(逆)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일보 김창우 정치부장 역시 “이번 대선에서 ‘강원도의 힘’을 보여 주자는 목소리가 많다”며 “강원 표심을 당락의 주요 변수로 만들자는 여론에 따라 보수세력이 집결했다”고 말했다.

제주 민심은 대선 ‘풍향계’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가 일찌감치 1위를 질주하자 다소 맥이 풀린 모습이다.

한라일보 김인배 편집국장은 “감귤가격 폭락, 관광산업 위축 등으로 지역 유권자들은 경제에 관심이 많다”며 “이념 논쟁이 사라진 것도 이번 대선의 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는 제주지역 공약을 놓고 후보별 차별화가 가능했으나 이번 대선은 정책 대결이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춘천=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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