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세 꺾인 친노그룹… 총선 향해 쪼개지나

  • 입력 2007년 10월 17일 0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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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선 참패로 입지 흔들… 어디로 갈까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탈락함에 따라 그의 대표적 지지기반이던 친노(親盧·친 노무현) 그룹들도 입지가 흔들릴 공산이 커졌다. 정동영 대선후보 체제에서 친노 그룹이 중책을 맡아 대선을 치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고, 정 후보 측도 내색은 안하지만 대선과 내년 총선을 거치며 ‘친노’ 딱지가 자연 소멸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친노라는 단어에 다분히 ‘좌파 꼴통’ 이미지가 투영돼 있는 데다 최근에는 비리·부패 이미지까지 덧씌워진 탓이다.》

‘친노 외곽 조직만 단결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초반과 달리 결국 경선에서 이 전 총리가 최하위로 내려앉은 것도 결과적으로 친노 그룹 내의 분화나 다른 정파로의 흡수·통합에 가속도를 붙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노 세력들이 개혁성을 상실한 채 ‘어정쩡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매김 되면서 국민의 힘, 시민광장, 노사모 등 친노 외곽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결집할 수 있는 동력과 명분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불안한 동거’ 계속할까=이 전 총리를 지지한 통칭 ‘친노 그룹’에는 △유시민 김형주 김태년 이광철 의원 등 옛 개혁당 및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출신 △윤호중 이광재 이화영 서갑원 김종률 의원 등 의회정치연구회(의정연) 출신 386세대 △현 정부 전·현직 관료 출신이 모인 참여정부평가포럼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포함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계열이 포함돼 있다.

일부는 전략상 손학규 전 경기지사 지지발언을 했지만 속내는 이 전 총리 측과 가까웠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세균 유인태 문희상 의원 등 중진그룹도 큰 틀에서는 포함된다.

이 전 총리는 15일 저녁 선거대책위원회 해단 모임에서 “과거를 잊고 정 후보를 도와야 한다. 조만간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고는 했지만 친노그룹의 세력화를 위해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 측 관계자는 “현재 공석으로 있는 시도당 위원장 자리 등을 정 후보측 인사로만 채우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이 전 총리는 3개 층을 썼던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선거캠프도 완전 철수하지 않고 1개 층 일부를 연락사무소 개념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곳에서 친노그룹 인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갖겠다는 것. 이는 ‘당권’이 걸린 내년 1월 전당대회를 의식한 포석이라는 풀이가 많다.

이 전 총리는 휴식차 16일부터 지방 여행을 떠났으나 20일 정동영 후보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외부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 전 총리는 또 이날 캠프 인사들은 물론 경선 당시 자신을 지지한 활동가와 당원들을 모아 충남 천안시에서 워크숍을 하기로 했다. 이 전 총리 측 인사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정 후보를 돕자’는 결의는 꼭 할 것”이라면서도 “지지층 결속과 세 과시 의미도 포함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시민과 386 의원들 행보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옛 참정연, 의정연 출신 386 의원들도 “당원으로서 정 후보를 돕겠다”고는 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인사들은 정 후보 측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져도 ‘자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발 빠르게 내년 총선 준비에 돌입했다.

유 전 장관은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 씨가 대선후보가 되면 민주개혁세력이 궤멸할 것”, “이렇게 불법선거를 저질러서야 본선 후보가 된다 한들 내가 어떻게 대구에 가서 표를 얻어올 수 있겠느냐” 등 정 후보에 대한 강경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는 15일 후보자선출대회 직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지금은 승자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유 전 장관 측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끝나면 바로 대구 수성구로 내려가 총선을 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설마 제가 대구에서 출마한다는데 정동영 후보가 못하도록 하시지는 않겠죠”라고 말한 바 있다.

이광재 의원 측도 “국감이 끝나면 총선을 대비해 강원도당 위원장으로서, 또 지역구 의원으로서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호중 의원은 “오랜만에 지역구민 행사장에 가서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내 지역이 제일 따뜻하다”고 말했다.

한 친노 386의원은 “이른바 ‘김민석 학습효과’ 때문에 탈당 등의 집단 행동은 곧 자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대안을 암중모색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범(汎) 김근태 계’로 리모델링?=현 정부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한 참여정부평가포럼은 이 전 총리가 너무 큰 표차로 낙마하자 ‘실체가 과대평가돼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전 총리 측은 당초 ‘1만 명 참평포럼 회원이 10표씩만 모아오면 이긴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경선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

친노 그룹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계열로 흡수통합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13일 이 전 총리와 만나 ‘세력규합’의지를 다졌던 김 전 의장은 곧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만나 후보단일화 작업에 주도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기 정세균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중진들도 ‘민주개혁세력’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김 전 의장이 다시금 축이 돼야 한다는 데 심정적 동조를 보내고 있다.

중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민주개혁’ 정체성에 ‘경제’라는 시대의 화두를 교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게 숙제”라며 “강성 친노세력은 기존 색깔을 버리고 흡수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소멸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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