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100일간 20여차례 동교동行

  • 입력 2007년 8월 2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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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매달리는 행태를 보여 ‘정치가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범여권의 대선주자를 비롯해 지도부 등 주요 인사들은 최근 100일 동안 20여 차례나 대선 출마 선언 등의 주요 정치 일정이 있던 즈음에 김 전 대통령을 만나 김 전 대통령의 정치 개입 논란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DJ에게 매달리는 범여권=25일 일부 언론은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50년 전통에서 벗어났다”며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23일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한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나 민주당이 햇볕정책을 부인하고, 10월 초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 반대한 게 문제라며 ‘정통성’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민주신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사실을 왜곡한 허위 과장 보도’라고 비난했다. 또 김 전 대통령 측은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당 일부 지도자에 대해 한 얘기”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26일엔 민주신당의 대선주자인 추미애 전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추 의원에게 “참 잘했다. 우리를 지지하는 모든 국민이 대통합을 바랐고, 나도 바랐다”고 말했다고 추 전 의원 측 염동연 선대본부장이 전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추 전 의원이 민주신당으로 말을 갈아탄 게 대통합에 기여해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5월부터 최근까지 민주신당의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민주당 박상천 대표 등 다수의 범여권 주요 인사가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에도 김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정통성 문제나 대통합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의 얘기 때문에 범여권이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조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국가원로로서 체통을 지키고 정치개입 발언을 그만둘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침묵하나=김 전 대통령은 또 23일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2003년 노 대통령의 대북송금 사건 특검 수용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 비판했으나 노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민주신당에 합류할 때 사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저희에 대해 하신 말씀도 아니고, 청와대가 의견을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범여권에선 노 대통령의 침묵이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 정상회담에 장애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 친노(親盧·친노무현) 대선주자의 측근은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비판에 반응할 경우 정상회담의 의제 문제 등을 둘러싼 ‘범여권 대 한나라당’ 전선에 균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은 22일 민주신당 오충일 대표를 예방해 “민주신당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회 논의 때 중심을 잘 잡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또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독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다면 범여권의 자중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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