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영 前통일부장관-양승함 정치학회장 특별대담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와 전망 등을 놓고 대담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홍순영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와 전망 등을 놓고 대담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28∼30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본보는 8일 홍순영 전 통일부 및 외교통상부 장관과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을 초청해 긴급 대담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 등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 되어야 한다”며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민족끼리의 회담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적인 인식과 발맞춰 진행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김대중 정부 때 외교부 장관과 주중 대사를 거쳐 통일부 장관을 지낸 홍 전 장관은 북한과 접촉하며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과정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핵문제 해결 반드시 논의돼야

▽양승함 회장=노무현 대통령이 평소 ‘선(先)핵문제 해결, 후(後)정상회담’ 원칙을 이야기했는데 이 원칙에 다소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2·13합의가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1차 정상회담이 역사적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될 것이다.

▽홍순영 전 장관=북한은 한 사람이 결정하는 체제다. 최고결정권자의 생각을 직접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두 정상이 담백하게 의견을 교환해야지 합의 도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남북문제 중 가장 핵심은 핵문제 해결이다.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평화공존과 통일을 논의하는 것은 어렵다.

● 홍순영(70)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주독일 대사, 주중국 대사, 주러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장관 △통일부 장관 △명지대 석좌교수(현)

▽양=현재 양국을 둘러싼 국제사회 분위기는 좋다. 정상회담이 2·13합의를 완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온건파가 힘을 얻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속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틀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현 정권과 협상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의제로는 평화체제 방향 제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정상회담 정례화 등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밖에 북한과의 철도 연결, 올림픽 월드컵 단일팀 형성 등도 사회문화 교류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홍=남북교류, 대북 지원, 올림픽 단일팀 등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공허한 주제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은 핵 문제이며 6자회담 이행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의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평화체제를 논의하지 말고 6자회담에 대해 양국 정상이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에 이번 정상회담 성공의 성패가 달려 있다. 물론 평화체제 문제에 대한 구상에 대해 양국 정상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합의문은 안 내도 된다. 가급적 회담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다시 평양 방문, 현 정권 부담 커져

▽양=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봤을 때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상대국에 대해 존중한다면 약속을 이행해야 하며, 또 관례상 정상이 한 번 가면 상대국 정상이 한 번 와야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 대통령이 평양에 직접 가는 것은 현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정상회담에서 ‘퍼주기’식 결과가 나온다면 정치적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서 각별히 유의해야 하고, 대통령의 의전에 대해서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홍=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에 답방을 안 했다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북한은 개방의 의지도, 준비도 되지 않은 국가다. 남북 신뢰가 그만큼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서울 답방을 고집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문제는 북한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개방에 대해 약속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선군정치를 고집해 왔다. 이를 덩샤오핑(鄧小平)처럼 경제로 부흥해야 한다고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아직 그런 증거는 없다. 그런 북한의 내부적인 결심이 있기 전에는 핵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며 평화체제, 통일도 이야기하기 힘들다.

● 양승함(57)
△연세대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장 △연세대 사회과학 대학장(현) △연세대 행정대학원장(현) △한국정치학회장(현)

▽양=북한은 핵문제에 있어 강온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해 왔는데 어쨌든 방향은 핵 폐기 쪽으로 오고 있다. 그런 시점에 정상회담이 의미가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로 핵 폐기 프로세스를 선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행동 대 행동’으로 뭔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텐데 여기에 현 정권의 부담이 있다.

●‘민족끼리’ 회담 경계

▽홍=발표문을 보면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입각하여’라는 부분이 있다. 회담이 이뤄지는 것은 의미 있지만 남북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국제공동체의 관심인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6자회담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지에 대해 심도 있는 협의가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민족끼리 하는 회담이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회담하는 거다. 남북관계의 장래를 봐서도 하루아침에 연방단계로 가고, 통일이 될 수는 없다.

▽양=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민족공조를 강조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한일, 북-일 관계가 냉각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한 견제, 북한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민족공조가 강조될 가능성도 있다.

정상회담은 9·19공동성명, 2·13합의 등 6자회담의 결과물이 상호 결부되어야 한다. 1차 정상회담에서는 느슨한 연방제를 언급하는 등 지나치게 민족적인 의미가 강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국제적인 최대 관심사인 핵문제가 논의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홍=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핵을 폐기하고 6자회담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겠다’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홍보무대다. 민족끼리 한다는 명목으로 미국, 중국, 일본을 제쳐놓는다면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 일본과 수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세계 속에서 통일의 한국과 한국 역사의 장래를 내다보고 평화와 번영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선에 별 영향 없을 것

▽양=정상회담 시기가 그렇게 적절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이 있으면 이를 워킹그룹에서 구체적인 안을 협의한 뒤 추진해야 하는데 정권이 6개월 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제대로 하려면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또 19일 한나라당 경선을 거쳐 결정된 후보가 뉴스의 초점을 받을 시기에 정상회담을 열기 때문에 선거용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대선에서 정상회담은 여권에 아무래도 호재일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은 초당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의구심을 가지고 볼 필요도 없다고 본다.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정치권도) 협력해야 한다.

▽홍=국내 정치, 대선에는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다. 양국 지도자도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한다. 국내 정치를 모티브로 해서 역사적인 행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정권이 잘 준비해서 그 성과를 다음 정권에 넘겨준다고 여겨야 한다. 임기는 민주주의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 말에 평양에 가려 했다가 새로 선출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뜻대로 취소했다.

▽양=북한과 합의를 도출하는 데 막대한 경제지원이 필요했을 텐데 차기 정권에 부담이 되는 수준까지 가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은 냉정하게 협상 과정과 성과 지켜봐야

▽홍=전쟁을 하면서도 대화는 하기 마련이다. 남북 교류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정상이 만나는 것은 좋다. 이산가족끼리 상봉하고, 탈북자 1만 명 시대도 열리는 등 좋든 싫든 남북의 공존 수준이 상당한 위치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상회담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양=남북문제는 정파적 차원을 떠나서 보는 것이 옳다. 정상회담을 대축제인 양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도, 선거용으로만 폄훼해서 회담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다. 국민은 냉정, 냉철, 신중한 자세로 정부가 북한과 좋은 협상을 이루고 오기를 기대하며 잘 지켜봐야 한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때 우리 나라가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떠올리며 이 기회에 핵만은 평화를 위해 우리 민족이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정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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