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세금 물쓰듯…” 최하평가 직원에 330% 성과급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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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회 회의록에 나타난 실태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국민건강보험공단 임시이사회장.

공단 측이 성희롱을 당하거나 자녀를 입양한 직원에게 각각 7일의 휴가를 주도록 하는 안건을 내놓자 일순간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김영배(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사외이사는 “이미 1년에 쉬는 날이 150여 일이나 되는 상황에서 민간에서 대부분 금지하고 있는 ‘목적 휴가’의 신설은 타당하지 않다”며 “이 안건을 통과시키겠다면 퇴장하겠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런 발상에 대해 “민간 기업이라면 기자회견감”이라고 분개했다.

이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공단 측은 일단 안건 처리를 보류했으나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28일 이사회에서 자녀 입양에 따른 휴가는 접어 두고 성희롱 휴가는 일수를 줄여 5일간의 휴가를 준다는 안건을 결국 통과시켰다. 일부 공기업 등 공공기관들이 이처럼 이사회의 비판과 제지도 무시한 채 각종 명목을 붙여 휴가 등 후생복지를 남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방만한 경영의 뒷감당은 국민의 혈세(血稅)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관련 법 개정 등 특단의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사회봉사하려고 휴가 간다

기획예산처가 2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통해 밝힌 ‘공공기관들의 2006년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많은 기관이 이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간기업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방만한 경영을 해 왔다.

특히 일부 기관의 기관장과 감사는 정부 여당에서 흘러 들어온 ‘낙하산 인사’들인 것으로 나타나 이들이 해당 기관의 경영혁신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5·31지방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대구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공단으로 자리를 옮긴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다.

지난해 8월 근로복지공단 이사회에서는 공단 측이 창립기념일 대체휴가 1일, 사회봉사의 날 대체휴가 1일, 태아검진휴가 8시간을 추가로 인사복무규정에 반영시키려다 이사진의 제지를 받았다.

당연직 이사를 대신해 이사회에 참석한 김재훈 예산처 노동여성재정과장은 사회봉사의 날 대체휴가와 관련해 “유급(有給) 휴가를 주는 것이 과연 사회봉사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공단 측은 “사회봉사 휴가는 윤리경영 차원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단은 이날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통과시키지는 않았지만 현재 단체협약을 개정해 이들 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 공단의 감사는 노무현 대통령인수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영대 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이다.

○ 배우자 외할머니 사망에도 위로금 200만 원

일부 기관은 다년(多年) 휴직제 신설을 남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30일 한국지역난방공사 이사회에서는 직원의 배우자가 외국에서 근무하거나 유학하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최대 4년까지 휴직할 수 있도록 하는 인사규정 개정안이 논란이 됐다.

산업연구원 산업동향분석실 실장을 지낸 온기운 사외이사는 “4년씩 휴직을 허가하면 조직운영이 느슨해질 우려가 있을 텐데 다른 회사의 사례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몇몇 공기업은 5년까지도 휴직을 허용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공사 측은 이와 관련해 22일 “4년간의 휴직기간에는 급여는 물론 복리후생 혜택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 공사의 감사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외협력특보를 지낸 장남진 씨다.

지난해 6월 한국철도공사의 이사회에서는 직원 배우자의 외조부모 사망 시에도 기본급(평균 200만 원)을 위로금으로 지급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김동건 사외이사는 “민간기업들은 부모가 사망해도 30만 원 안팎을 지급하는 데 그친다”며 비판했고, 공사 측은 이를 받아들여 배우자의 모계(母系) 조부모부터는 사망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후생복지 규정을 수정했다. 이 공사의 사장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북-강서갑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철 전 의원이다.

○ 부족한 돈은 채권 찍어내 충당

지난해 9월 지역난방공사 이사회에서는 과도한 상여금 지급이 문제가 됐다.

최종연 사외이사는 “성과등급이 최하위인 11등급 직원에게도 기본급의 330%를 상여금으로 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사 측은 “성과상여금은 보수의 성격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공사 관계자는 “예산처가 상여금 지급 상한을 기본급의 200% 이하로 낮추라고 하기 전 난방공사는 기본급의 500% 안팎을 상여금으로 지급해 와 한꺼번에 조정하기가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한국도시철도시설공단 이사회에서는 채권 남발을 통한 재원 조달이 지적됐다.

당시 김병도 사외이사는 “2006년에 쓰겠다는 4조8939억 원 중 28.4%인 1조3917억 원을 채권으로 조달하겠다고 하는데 원리금 상환 방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사립학교 교직원연금관리공단은 지난해 5월 이사회에서 강원 설악산 오색호텔 등에 대한 무리한 부동산 투자에 따른 손실이 비판 대상이 됐다. 이 호텔 부지의 감정가격은 2003년 평당 93만 원에서 지난해 5월 현재 83만 원으로 떨어졌다. 공단은 이 호텔에 매년 2억 원 이상의 유지비를 쏟아 붓고 있다.

배국환 예산처 공공혁신본부장은 “지금까지 공공기관의 이사회는 허울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4월부터 시행되면 이사회 지적이 실제로 공공기관 운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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