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엘리트는 ‘임동원 사단’으로 통한다?

  • 입력 2007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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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간 국가전략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가 외교안보 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9년간 통일부 장관을 지낸 8명 중 임동원, 정세현, 이종석 등 3명이 ‘세종 맨’이다. 이들의 장관 재직 기간을 합치면 4년 4개월이나 된다. 이들만이 아니다.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1995년부터 11년간 세종연구소 부소장과 소장을 지냈고, 김만복 국가정보원장도 2002년 세종연구소에 몸담았다.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교사’로 불리는 문정인(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외교통상부 국제안보자문대사는 2005년부터 이 연구소를 꾸려 가는 세종재단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쯤 되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용되기 위해선 세종연구소로 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대북 포용정책을 펼치는 두 정권에서 세종연구소 출신들이 이처럼 잘나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임동원의 힘?

세종연구소 출신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입신양명’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임동원 세종연구소 이사장과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종석 전 장관. 임 이사장은 1994년 성균관대에서 북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변방 학자’ 이종석의 ‘품질 보증’을 해 주고 연구소에 취직시켰다. 임 이사장은 당시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이었지만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로 한반도비핵화선언(1991년),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채택에 깊숙이 관여했던 터라 연구소 내에서의 위상과 영향력이 컸다.

지난해 12월 장관 퇴임 직후 수석연구위원으로 세종연구소에 복귀한 이 전 장관은 “나는 임 이사장을 존경하고 임 이사장은 나를 학문적으로 신뢰하는 그런 관계”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정원 간부였던 김만복 현 국정원장은 임 원장의 사람이면서 이종석 전 장관과도 세종연구소를 매개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정상회담에 공을 세웠지만 2002년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으로 인사 명령을 받아 사실상 좌천됐던 김 원장은 이곳에서 ‘미래의 실세’인 이종석 당시 북한연구실장의 이웃 연구실을 사용하며 주요 안보 현안에 대한 교감의 폭을 넓혔다.



○아니면 대통령의 힘?

일부에서는 세종연구소 출신 인사들의 득세는 결국 대통령의 힘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임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안보수석→통일부 장관→국정원장→통일부 장관→외교안보특보로 활동했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했다. 이종석 전 장관도 현 정부에서 4년여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외교안보의 실세로 떠오른 이들에게는 자기 사람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그들과 이념적 성향이 비슷했던 세종연구소 인맥을 중심으로 일종의 ‘이너 서클’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이 전 장관은 ‘자기 사람’을 챙긴다고 구설에 몇 차례 올랐다. 지난해 5월 이 전 장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멤버가 중심이 된 현 정부 외교안보 실세들의 승진 축하 파티를 벌여 곤욕을 치렀다. 이 자리에는 세종연구소 연구원 출신 인사도 있었다.

‘대북 포용’ 코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알게 모르게 생겨났다. 1990년대 중반에 연구소를 떠난 한 학자는 “임동원 이사장이 온 뒤 김대중 정부가 하고 싶어 하던 국제회의 등을 세종연구소 이름으로 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도 “3층 건물인 연구소에서 우파와 좌파가 사용하는 층이 다르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진짜 힘의 원천은?

하지만 세종연구소 사람들은 임동원, 이종석과의 인연이 ‘세종연구소 파워’의 원천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연구위원은 민간연구소로서 20년 이상 안보통일 문제만 전문적으로 연구해 오면서 초당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 온 결과라고 주장한다.

현재 공석 중인 소장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박기덕 부소장은 “각 연구위원은 정권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연구한다”며 “진보와 보수가 어우러져 토론하고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종연구소 연구진에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부터 ‘햇볕정책 옹호론자’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세종연구소는 외견상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2001년 이상현 정성장 연구위원 이후 6년째 새 연구위원의 충원이 중단된 상태다. 한때 30여 명에 이르던 연구위원도 이제는 17명으로 줄어 규모 면에선 ‘군소 연구소’가 됐다.

이 때문에 재정 면에서의 건실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美 싱크탱크 2000개… 정부정책 영향력 막강

현재 미국 내에는 모두 2000여 개의 싱크탱크가 있다. 이 중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외교협회(CFR), 랜드연구소 등 10여 개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싱크탱크로 꼽힌다.

20세기 초 지식인들의 사교 모임으로 출발한 싱크탱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 정책에 조언을 하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1970년대부터는 보수·진보 등 정책 성향과 일치하는 정당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고급 관료를 배출하는 등 정책 주도기관으로 부상했다.

보수 성향인 헤리티지재단의 경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공화당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의 70%가량이 실제 정책으로 채택됐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 존 볼턴 국무부 차관 등을 배출한 미국 기업연구소(AEI)는 ‘백악관 별관’으로 불릴 정도다.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배출하는 등 민주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2200만 달러의 연간 예산과 200여 명에 달하는 연구원이 있는 CSIS는 1970년대 이후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브레진스키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 제임스 슐레진저 국방장관, 윌리엄 브로크 노동장관 등을 배출했다.

미국에선 싱크탱크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을 맡았다가 다시 싱크탱크로 돌아가는 ‘회전문’식 자리 옮기기가 일반화돼 있다. 이는 이론과 현실을 접목할 수 있어 정책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싱크탱크들이 특정 기업이나 정파, 이해단체의 정책 전파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국책연구소의 현주소

외교·안보 분야의 국책연구소로는 외교통상부의 외교안보연구원, 통일부의 통일연구원, 국방부의 한국국방연구원, 국가정보원의 국제문제조사연구소 등이 있다. 이들 연구소는 북한 핵실험이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핵심 이슈와 관련해 정부 방침의 토대가 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직자들에 대한 교육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정부의 간섭 등으로 경쟁력 있는 보고서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전시작전권 문제와 관련된 비판이 많아 국책연구소에 자료를 만들어 보내라면 틀에 박힌 보고서가 올라온다. 지금 연구소들은 옛날부터 해 오던 연구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그러나 국책연구소 관계자들은 정책연구 보고서가 발주, 생산, 활용되는 모든 단계에서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정부 방침과 다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에 대한 연구에는 정부의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정부와 코드가 맞는 특정 교수에게 정책연구 과제를 몰아주고, 보고서 내용 역시 정부 방침에 맞게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연구원들이 외부 기고나 인터뷰 등을 할 때는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정부 코드’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펼 경우에는 징계를 당하기 때문에 ‘정부 눈치 보기’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5년 8월 홍관희(현 안보전략연구소장) 당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이 ‘6·15 선언의 반민족성과 무효화를 위한 과제’라는 글 등을 외부에 기고했다가 감봉과 1년간 대외활동 금지라는 중징계를 당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 그런 경우다.

전시작전권 환수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국책연구소 소속 학자 전체에게 함구령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국책연구소는 연구 여건은 좋은 편이지만 정부의 제약 때문에 기회만 된다면 대학이나 민간 연구단체로 이직하려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구의 자율성 문제는 국책연구소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됐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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