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밟을 생각 말라’ 여권주자 향해 경고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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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섭섭하고 때로는 분하다.” “사람도 뒷모습이 좋아야 한다.”

26일 국무회의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를 겨냥해 또다시 포문을 연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원색적이었다. 대통령과 총리로 호흡을 맞춘 사이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노 대통령은 이날 “그동안 여러 차례 내가 공격을 받았지만 참아왔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하나 해명하고 대응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을 ‘밟고 나설’ 여권 대선주자를 향해 ‘앞으로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왜 고건만 때리나=고 전 총리 이전에도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판한 현 정부 출신 장관들이 없지 않았다. 현 정부 초대 내각 멤버인 조영길 전 국방,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은 퇴임 후 노 대통령의 외교 안보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그동안 이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최근의 고 전 총리와의 갈등은 노 대통령이 촉발한 것이다.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고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는 문제 발언을 했고, 고 전 총리는 다음 날 “자가당착”이라고 대응한 것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유독 ‘고건 때리기’에만 집중하는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 전 총리가 노 대통령의 타깃이 된 1차적 요인은 그가 현재로서는 여권 내 통합신당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다. ‘고건 때리기’는 통합신당 논의의 김을 빼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 주자들은 나를 밟지 말라”=하지만 노 대통령의 내심 ‘경고’하려고 하는 대상은 고 전 총리보다는 오히려 현재 여권에 몸담고 있는 대선주자군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고 전 총리는 어차피 우리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 아니냐”고 말하고 있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고 전 총리를 빗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 의원 등에게 엄중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이 최근 노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는 등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나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비판해서 말한 일이 없다”며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과 차별화를 부추기던 사람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며 여당 내 대선주자군의 차별화 전략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1년 여 남은 기간에 ‘식물대통령’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한 선제공격이기도 하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내년 대선까지 여권을 자신의 뜻대로 관리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할 일도 열심히 하고 할 말도 다할 생각이다”라고 말해, 앞으로도 ‘걸리는’ 사람이 있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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