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핵대응 ‘장고’… 정부대응 ‘고장’

  • 입력 2006년 10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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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은 신중하게 분석하고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중국 측이 전했다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차 핵실험 유보’ 발언의 진위와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같은 답변만 되풀이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진실로 판단한다는 것인지, 북핵 사태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향후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인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윤 대변인의 모호한 답변은 북핵 사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고민은 좀 더 길어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9일 이후 노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에서 이 같은 고민이 그대로 배어났다. 노 대통령은 9일 기자회견에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 아닌가”라고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하지만 “햇볕·포용정책이 무슨 죄가 있느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이틀 만에 말꼬리를 흐렸다.

노 대통령은 20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을 접견한 자리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각 국가에 요구하는 (대북 제재의) 최소한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우리 정부 쪽에 그 취지를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시해 놓았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상황 파악도 아직 안 됐다는 토로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북핵 사태 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수시로 기자회견 등을 통해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역설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노 대통령의 고민은 북핵 문제를 외교적, 현실적인 바탕에서 풀기보다 국내 정치 상황에 치우쳐 접근하는 듯한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조치에 동참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내 지지층과 열린우리당의 ‘무조건 평화 해결’ 주장을 의식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앞으로 내릴 결정은 현 정부 출범 초 국내 지지층과 미국의 틈새에서 눈치만 살피다가 파병은 파병대로 하고서도 고맙다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 ‘이라크 파병’ 사태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하루라도 빨리 북핵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서둘러 확고한 방침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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