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대통령 속앓이와 北미사일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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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대통령이 애먼 속앓이로 잠을 설쳤을지 모를 새벽에 북한은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민심에 맞서느라 속을 끓여 온 남한 대통령에게 평양정권이 던진 메시지는 역설적이다. ‘핵이든 미사일이든 그거야 어디까지나 조미(朝美) 간 문제이니 새삼스레 속앓이할 거는 없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북의 핵이나 미사일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며칠 전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이 비판했듯 “핵이나 미사일 개발을 북한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도 우리가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는 내재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북핵의 자위적(自衛的) 성격을 언급한 ‘로스앤젤레스 발언’(2004년 11월)이 바로 그렇다. 여기에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던 ‘몽골 발언’(2006년 5월)이 겹치면 평양정권으로서는 입맛에 맞는 ‘민족 공조’의 신호로 받아들일 법도 하다.

물론 적이자 동족인 남북의 특수 관계를 당사자가 아닌 미국 신보수강경파(네오콘)의 시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가 북을 ‘벼랑 끝 도발’로 몰아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한미일 공조 체제에서 빠져나와 중국을 지렛대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노 정권의 발상은 현실을 외면한 어설픈 이상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북의 미사일은 균형자의 허상(虛像)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노 정부는 스스로 참여정부라고 했다. 참여의 전제조건은 소통(疏通)에 있다. 제 아무리 탈(脫)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내세운다고 한들 권력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서야 소통이 될 수 없다. 소통이 안 되는데 무슨 참여인가.

대통령 속앓이의 병인(病因)은 소통이 막힌 거짓 참여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정부에 참여하는 길은 민심을 표출하는 것이고, 그것의 제도화가 선거다. 그런데 선거에서 드러난 민의(民意)에 거스르는 인사를 해 놓고 그것을 여론이 비판했다고 “속이 아프다, 속앓이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대서야 참여는 입에 발린 말일 뿐이다. 더구나 유리하면 ‘현실의 위대한 민심’이고, 불리하면 ‘역사 속 민심과 현실의 민심은 다르다’고 둘러대서야 참여란 애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다.

걸핏하면 참여정부의 정책 철학을 앞세우는 것도 그렇다. 도대체 ‘좌파 신자유주의’의 구체적인 정책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설령 정책 철학이 있다고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많은 국민이 실패했다고 하면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을 계속 요직에 앉히면서 ‘코드 인사가 뭐가 나쁘냐’고 핏대를 올려서야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래저래 노 정권 3년 반 동안 정말 속이 상한 건 국민이다. 그러니 국민이 대통령의 속앓이를 수긍할 리 있겠는가.

하기야 무슨 얘기를 한들 대통령이 생각을 쉽사리 고칠 듯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북의 미사일 발사 건만은 독선(獨善)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북문제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실존(實存)과 연계된 문제다.

우리 국민 절대다수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런 만큼 남북 평화공존에 대한 공감대도 넓다. 김정일 정권의 억지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지난 6년간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혈세를 감당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의 인내는 본질적 회의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됐다. 무조건 북의 비위를 맞추고 감싸고돌며 ‘민족끼리’를 외치는 것이 진정한 평화공존인가. 쌀 주고, 비료 주고,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며 미사일 발사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도 ‘면전에 침을 뱉다시피 한’ 김정일 정권을 위해 계속 한미동맹을 악화시킬 것인가. “북의 미사일보다 위험한 것은 한미동맹의 균열”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데도 ‘협력적 자주국방’을 되뇔 것인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분명하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혼자 속앓이할 것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역(逆)발상은 위험천만이다. 한미일 공조의 기본 틀 아래에서 한반도 평화관리가 가능한 현실적 대안(代案)을 제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평양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서울은 어쩌지 못한다는 잘못된 신호부터 단호하게 잘라 내야 한다. 그 점에서 정부가 내주 부산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현명치 못한 결정이다. 북의 선전장이 될 게 뻔한 자리에서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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