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그날 선양 총영사관에서 무슨 일 있었기에

  • 입력 2006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이 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이 건’이란 중국 선양(瀋陽)의 한국 총영사관에 있던 탈북자 4명이 담을 넘어 미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간 사건을 말한다.

사건의 윤곽이 알려진 19일 이후 베이징(北京)의 주중 한국대사관이나 선양 총영사관 직원들의 대답은 마치 자동응답기를 틀어놓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하고 답변을 피하거나 “에이, (대답 못하는 걸) 잘 알면서 뭘 계속 물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탈북자에 대해서만큼은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듯 “(베이징 특파원으로 온 지) 오래된 분들은 안 묻던데, 온 지 얼마 안 됐죠?” 하며 면박을 주는 직원도 있다.

서울의 외교통상부 역시 마찬가지다. “탈북자 문제는 일절 확인해 주지 않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탈북자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또 관련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처 방향을 말하기 어렵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외교부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은 당연히 ‘도대체 한국 영사관에 잘 있던 탈북자들이 왜 담을 넘어 미국 영사관으로 갔는지, 언제 그랬는지, 다친 사람은 없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을 알 권리가 있다. 무슨 동남아의 정글 속을 헤매고 있는 탈북자들의 소식을 묻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2005년 1월 정순균 당시 국정홍보처장이 펴낸 참여정부의 홍보 매뉴얼은 ‘공무원의 홍보 수칙’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모든 정책 추진 사항을 투명하고 소상히 알려 평소 국민의 신뢰를 쌓아 가야 합니다. 브리핑 시 상세한 배경 설명과 함께 질의응답 등을 통해 언론의 취재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홍보 수칙은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오보와 왜곡 보도를 줄인다”며 “일반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 간담회를 통해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스스로 만든 매뉴얼처럼 하지는 못할망정 국민의 최소한의 알권리는 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작정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과연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 특히 외교관의 올바른 자세인지 묻고 싶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