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개방 봄바람]<上>술렁이는 신의주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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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에도 봄이…중국 단둥 시 진장산공원에서 바라본 압록강 철교(중조우의교)와 신의주. 중조우의교 오른쪽의 끊어진 다리가 옛 압록강 철교다. 신의주 너머 들판 뒤편의 시가지가 남신의주다. 신의주가 개방되면 ‘성분’이 믿음직하지 못한 일부 주민은 남신의주로 옮겨 가야 한다. 단둥=구자룡 기자
강 건너에도 봄이…
중국 단둥 시 진장산공원에서 바라본 압록강 철교(중조우의교)와 신의주. 중조우의교 오른쪽의 끊어진 다리가 옛 압록강 철교다. 신의주 너머 들판 뒤편의 시가지가 남신의주다. 신의주가 개방되면 ‘성분’이 믿음직하지 못한 일부 주민은 남신의주로 옮겨 가야 한다. 단둥=구자룡 기자
《‘신의주 개방 및 개발 재개는 시간문제다. 4·15(김일성 주석 생일) 이전에 무슨 조치가 나올지도 모른다.’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1월 중국을 극비 방문하고 돌아온 지 2개월. 아직 김 위원장의 ‘방중 구상’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찾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시 전역에서 폭풍 전야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 잔뜩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2005년 10월 북한 방문, 그리고 김 위원장의 1월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한의 중국식 ‘개혁 개방’ 드라이브가 양국 간 교역 요충인 단둥과 신의주에서 곧 시작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양국 관계의 변화 움직임을 단둥 현지 취재를 통해 긴급 진단한다.》

중국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교통로는 압록강 ‘중조우의교(中朝友宜橋)’가 유일하다.

단둥의 기업인들이 허가증을 받아 신의주로 건너가도 대부분 강변에 설치된 보세구역에서만 북측 파트너를 만날 수 있으며 숙박은 할 수 없다. 트럭이 짐을 하역하지 못하면 차는 그냥 두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당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신의주가 개방되면 이런 풍경들이 달라진다.

▽달아오르는 신의주 개방 움직임=북한과 중국의 신의주 개방 및 개발 구상은 4월 초 열릴 것으로 알려진 ‘신의주 개발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 정부 고위 관리가 대표단장을 맡고 랴오닝(遼寧) 성과 단둥 시, 신의주시 관계자가 실무진으로 참여한다. 단둥 시는 실무적인 회의 준비를 위해 별도의 태스크포스팀도 극비리에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회의 의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의주를 개방 및 개발할 때 양국 간에 협조가 필요한 내용, 외국 투자 유치 방안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단둥에서 만난 한 소식통은 귀띔했다.

그러나 단둥에선 벌써 신의주 개발 붐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 신도시 개발 발표가 나기 전부터 땅값이 들썩이곤 하는 것과 흡사하다.

단둥의 사업가 A 씨는 최근 북한의 모 은행이 단둥 시내 빌딩 한 곳을 미화 300만 달러에 매입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더욱이 그 은행 관계자는 “신의주가 개발되면 단둥도 투자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A 씨는 전했다.

신의주의 제지공장에서 15년 이상 근무해 온 중간 간부 B 씨는 2004년 말 단둥에서 2년가량 중국어를 배우고 최근 신의주로 돌아갔다. 그는 신의주에서 중국어 ‘몰래 과외’를 할 계획이다. 과외비는 한 달에 북한 돈으로 약 1만5000원(약 7000원). 신의주 지역 근로자 임금의 약 10배에 이른다. B 씨가 노리는 ‘학생’은 신의주 개방에 대비해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신의주를 드나들 수 있는 중국인 직원들을 두고 교역사업을 하고 있는 한 한국인 기업인은 “북한은 신의주 개방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예방주사’로 우선 미화 1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 자본을 모아 ‘대형 상점’을 짓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신의주의 한 공장에서 중간 간부로 일하다 단둥에 온 북한의 C 씨는 신의주가 시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간선도로를 넓히는 ‘1호 도로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신의주 개발 재추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의주 개발과 남신의주=신의주의 개방 개발과 관련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남신의주. 신의주와 논을 사이에 두고 5km가량 떨어져 있는 남신의주는 이를테면 신도시다. 2002년 추진된 행정특구가 순조롭게 진행됐다면 당시 약 22만 명의 신의주 인구 중 10만 명 이상을 이곳 남신의주로 이주시킬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신의주에서 남신의주로 주민을 이주시킨다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의주 개방 및 개발이 본격화하면 곧바로 주민의 이주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단둥 현지 소식통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성분조사를 거쳐 ‘개방된 신의주’에 둘 수 없는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것뿐 아니라 신의주 개발에 필요한 인력이 거주하는 배후도시로 남신의주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둥=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신의주는

2002년 9월 특구 지정 양빈 구속돼 개발 중단

북한은 2002년 9월 신의주 일대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정하고 이후 50년간 입법 사법 행정의 자치권을 부여했다.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도 만들어 개인의 상속권과 사유재산권을 허용하고 독자적인 화폐금융제도와 예산집행권을 부여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도 담고 있었다.

2000년 5월 중국 베이징의 중관춘(中關村)을, 2001년 1월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지구를 돌아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7·1경제개혁 조치와 함께 내놓은 개방 카드였다.

그러나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네덜란드 화교 출신 사업가이자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인 양빈(楊斌) 씨가 중국 당국에 구속되면서 북한의 신의주 개발은 중단됐다. 중국이 양 회장을 구속하며 신의주 특구 개발에 제동을 건 이유는 북한이 접경지역에 특구를 설치하면서 중국과 협의를 하지 않았고 또 특구 내에 대규모 카지노장 같은 ‘불건전’ 사업항목을 포함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 회장은 탈세 등의 혐의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됐다는 설도 나돌았지만 단둥의 한 소식통은 “그는 여전히 복역 중이며 다만 옥중에서도 사업에 필요한 결재는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둥=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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