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논평/이재호]정동영이 대구로 간 까닭은

  • 입력 2006년 2월 20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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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선에 승리하자마자 어제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역시 순발력이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곧바로 적(敵)의 심장부에 뛰어들음으로써 그는 크게 네 가지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여권의 대표주자는 오직 나밖에 없다는 대표성 부각일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싸워서 이길 사람은 정동영이다,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TK 지역을 파고들 수 있는 사람도 정동영이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고,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봅니다. 다른 정치인들 같으면 동작동 국립묘지나 참배하고, 집에서 며칠 쉬면서 언론과의 인터뷰 등으로 느긋하게 며칠을 즐겼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경선 승리의 효과도 그날로 사라졌겠지요.

정의장의 순발력, 장관 보다는 정치인

둘째, 그는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인혁당 관련자들의 묘지를 찾음으로써 자신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와 대비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저에는 정동영은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자유민주주의자라는 강한 메시지가 깔려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대구는 어두운 과거와 청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시대와의 단절을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 정치인 중에, 더욱이 호남을 연고로 하는 정치인 중에 대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요.

셋째. 지역주의를 실질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정동영은 누구처럼 무슨 일만 터지면 지역 연고지를 찾는 그런 용기 없는 인물이 아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을 것입니다. 그는 “영남의 저학력, 저소득층에 만연된 박정희 신드롬을 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계급의식’, 정확히 말하면 ‘계층의식’을 통해서만이 지역감정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 듯 합니다. 대구에 사는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층은 이념적으로 민노당이나, 아니면 열린우리당을 찍어야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한나라당만 찍었으니,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정동영은 목소리를 높인 것입니다. 그는 “DJ나 노무현의 동진정책이 지역감정 해소에 모두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계층이익에 호소하는 그의 신(新) 동진정책이 과연 먹힐까요.

끝으로, 그는 역설적으로 대구에서 호남의 지지층을 향해 결집을 요구했습니다. “호남 여러분, 제가 당선되자마자 대구에 내려온 심정을 제발 알아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대구에서 지역감정 타파의 주역임을 과시하고, 호남을 향해서는 지역적 단결을 호소하는 절묘한 수를 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시 정동영 의장은 장관보다는 정치인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지방선거는 물론 내년 대선에서도 이런 기조 위에서, 자신의 장점인 순발력을 최대한 발휘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은 과연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까요.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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