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對北 비료 지원

  • 입력 2006년 2월 1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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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독일 방문 때 “남북관계에서도 쓴소리를 하고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며 “비료 지원도 북한이 공식 대화 창구에 나와 요청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미국을 겨냥해 “얼굴을 붉혀야 한다면 붉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가 “북한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면서…”라고 비판을 받자 이를 의식한 듯했다. 북한은 그해 5월 대화 창구(차관급 회담)에 나와 비료 20만 t을 얻었고, 6월엔 15만 t을 추가로 요구해 받아 갔다. 노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 주고 실리를 챙긴 셈이다.

▷남북이 해마다 주고받는 비료라 뉴스거리도 안 되지만 때로는 발표 시기와 지원 규모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한다. 올해가 그렇다. 북한은 1일 장재언 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명의로 비료 45만 t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통일부가 이를 즉각 발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8일이나 지난 9일에야 언론에 알렸다. 양(量)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15만 t을 요청해 왔는데 예년 수준의 양을 더 요청할 것 같다. 예년 수준은 30만 t”이라고만 하고 넘어간 것.

▷늑장, 축소 발표 시비가 일밖에. 마침 6일엔 이종석 통일부 장관(당시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어서 “이 장관이 ‘대북(對北) 퍼주기’ 공격을 받을까 봐 발표 시기를 고의로 늦췄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말았다. 통일부는 뒤늦게 “작년에도 1월 13일 요청받고 2월 6일에야 공개했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등의 이유를 댔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년 만의 대풍(大豊)을 기록했다. 총 460만 t의 식량을 생산해 식량난 전인 1991년 수준(443만 t)을 회복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외국의 인도적 식량 지원을 전면 거부한 것도 사정이 나아졌기 때문. 고(故) 김일성 주석은 1956년 6월 흥남비료공장을 현지 지도하면서 “비료는 곧 쌀이고 쌀은 곧 공산주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남한이 주는 비료가 결국 공산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인 셈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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