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국]‘참여도시’ 주민 참여는 어디에?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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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국토개발정책은 의구투성이다. 참고할 만한 이웃나라 실패는 되풀이하고, 성공 사례는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실패 사례는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정부의 국토개조정책이고, 성공 사례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정부의 ‘고향 창생(創生) 1억 엔 사업’이다.

다나카의 국토개조정책으로 전국 곳곳의 땅값이 치솟았지만 오른 만큼, 그리고 오른 즉시 토지생산성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판상의 거품 생산성만 믿고 부동산 대출이 이루어진다. 얼마 뒤 토지생산성이 기대 이하임이 판명나자 땅값은 곤두박질쳤다. 덩달아 땅을 저당 잡은 은행이 무너지면서 일본경제는 장기침체를 면치 못했다.

국토균형개발을 최우선 국정지표로 내건 참여정부는 그 사이 각종 도시정책을 남발해 왔다.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의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개발을 예고하는 말뚝부터 먼저 박았다. 발전동력의 확보책을 면밀히 구상하기 전에 개발 가능성을 예고하다 보니 동력의 성공적 가동은 뒷전인 채 땅투기가 먼저 기승을 부린다. 심지어 주변지역에서도 개발 후광 효과가 과장되면서 거래는 없이 호가만 치솟았다. 과세를 통해 투기를 잡겠다고 공시지가를 상향 조정하지만, 지가 상승에 따라 담보대출이 먼저 급증한다. 일련의 연쇄반응은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할 전조로 보인다.

국토균형개발에 중앙의 지방하달식은 한계가 많음을 깨달은 일본은 1988년에 고향 창생사업을 펼쳤다. 전국 3000여 지자체에다 고장 발전을 위해 ‘알아서’ 하라며 1억 엔씩 배정했다. 중앙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던 지방은 1억 엔의 자유에 무척 당황한다. 정석대로 길, 공중화장실 등을 고친 곳이 많았지만, 한 고장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돈 값어치를 지킨다며 금괴를 사서 마을회관 앞에 전시했다. 이 군색한 방식이 뜻밖에 대박을 터뜨렸다. 매스컴에 알려지자 1억 엔짜리 금덩어리는 얼마나 큰가가 궁금한 구경꾼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일약 유명 관광마을이 되었다. 지방창의에 맡긴 정책발상이 거둔 결실인 것이다.

엊그제 보도된 ‘참여형 도시’ 정책은 분권의 실현이란 균형 개발의 대원칙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한둘 외국의 성공 사례를 전국 도시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려는 종래의 중앙지령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하달식은 복제(複製)개발을 양산해서 지방의 창의력을 오히려 저해할 소지가 있다. 그리고 이름만 새로 붙였지 그 사이 각계가 검토해 온 경제·환경·문화 조화형의 ‘지속가능도시’ 정책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선거용이란 의심을 먼저 받는다.

과연 참여정부는 도시경영의 비전을 제대로 갖고 있기나 한가. 세계화가 대세로 굳어진 시점에서 통일 독일의 새 도시정책을 참고할 만한데도 전혀 교훈을 읽지 못했다. 유럽연합의 강국은 영국 독일 프랑스이고, 이들의 국가경쟁력은 수도의 경쟁력이 결정적 열쇠가 되는 상황으로 굳어지자 독일의 정보엘리트들이 속속 런던, 파리로 떠난다. 그제야 비로소 인구분산형 국토구조를 자랑해 온 독일이 런던, 파리 같은 초대형 도시를 갖지 못함에 따른 상대적 불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베를린 불리기 정책에 착수했다. 행정도시를 만들어 수도 서울의 축소를 시도하는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참여형 도시는 주민 참여형 도시란 말이겠는데, ‘정부 참여’가 먼저 논의되니 우스운 일이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받을지 말지도 주민투표에 부치는데 국체에 관련된 행정도시 입지는 현지민 주민투표도 없이 밀어붙이는 지경에서 과연 주민참여가 제대로 될 것인가.

한민족이 만세로 살아갈 이 국토가 참여정부에 들어 정권 이해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 정권은 결국 짧은 것인데도.

김형국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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