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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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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았고,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확실하게 약속받았다. 회담 막판까지 쟁점이 됐던 ‘경수로 건설’ 문제에 대해선 북한과 미국이 한 걸음씩 양보해 “앞으로 논의해 보자”는 선에서 타협했다. 양국이 일단 확실하게 얻을 것은 얻고,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 둔 것이다.
그동안 팽팽히 대립해 온 북-미가 이번에 이런 방식으로 극적인 합의를 본 배경을 살펴본다.
▽북한은 왜 합의했나=북한은 경수로 건설 문제를 빼놓고는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해 추구했던 목표를 이번에 대부분 달성했다. 따라서 회담이 결렬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직면하느니 회담을 타결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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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공동성명에서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 특히 미국이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공격도 안 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1994년 제네바합의 때 핵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비해 진전된 것. 그동안 미국에 맞서 자위적 차원에서 핵개발을 해왔다고 주장해 온 북한으로선 핵 포기의 명분을 얻은 셈이다.
또 공동성명 중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앞으로 북한이 과연 남한에 핵무기가 없는지 등을 따져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지기로 합의’해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도 북한으로선 성과다.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에너지 지원 의사도 확인받았다.
현실적으로 볼 때 북한은 협상 결렬 시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내지 군사적 압박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실정이다. 결국 타결이 최선이었던 셈이다.
▽미국은 왜?=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 데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전면 폐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는 것이 전제되는 경우까지 평화적 핵 이용권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다른 나라의 주권을 제한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담에 참가한 다른 국가 모두가 중국이 제안한 공동성명의 4차 초안 수정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판을 깨는’ 것이 미국으로선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회담에 참여했던 우리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처음에 ‘경수로 문제는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가 방향을 선회하느라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핵 포기 조치의 이행 여부가 드러날 때까지 이번 회담 결과를 최종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도 그런 고심의 일단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며칠 또는 몇 주 내에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봐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 영변 흑연감속로를 가동해야 할 목적이 뭐냐”며 “가동을 지금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와 이라크 문제, 이란 핵 문제 등 중대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대북 압박정책을 계속 추진하게 될 경우 갖게 될 부담도 미국 측을 합의로 끌어들인 동력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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