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의원 ‘斷指’ 논란…공장사고? 혈서? 병역기피?

  • 입력 2005년 5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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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검지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광재 의원이 대학 시절 손가락을 스스로 절단했고 그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시비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의원이 대통령국정상황실장으로 재직할 때인 2003년 10월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문제의 검지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광재 의원이 대학 시절 손가락을 스스로 절단했고 그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 시비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의원이 대통령국정상황실장으로 재직할 때인 2003년 10월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이번에는 단지(斷指)로 병역 면제 의혹까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참여정부 들어 승승장구하던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수배 중이던 1986년 오른손 검지를 잘랐고 이 사유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왜 잘랐나=이 의원은 지난해 총선 직전 펴낸 ‘우통수의 꿈’이란 제목의 저서에서 86년 대학생들의 분신을 보고 고민하다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고 밝혔다.

“신림동 사거리에서 서울대 김세진 이재호 군이 분신을 시도했다. 몸에 불이 붙어 비틀거리면서 구호를 외쳤다.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나는 죽을 용기가 부족했다. 죽지는 못하지만 사는 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태극기 하나를 샀다.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다.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단지 경위에 대한 이 설명은 2003년 4월 이 의원 본인의 주장과 상반된다.

2003년 초 정치권에선 당시 이광재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이 병역 기피 목적으로 손가락을 잘랐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본보는 관련 의혹을 취재한 바 있다.

당시 이 의원은 본보 기자에게 “85, 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돼 인천 부평의 조그만 가내 주물공장에 위장 취업해 있을 때 혼자 기계를 다루다가 사고로 손가락이 잘렸다”고 설명했다.

사실 여부를 집요하게 따지자 이 의원은 공장이 있었다는 부평에 기자를 직접 데리고 가 2시간가량 안내까지 했지만, 이 의원이 지목한 곳은 주택가로 변모해 있었다. 이 의원은 공장 이름과 주인이나 동료 이름, 사고 후 찾아간 병원 이름 등을 묻는 질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의원의 부인도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려 군대에 가지 않았다”고 했었다.

이 의원은 85년 2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두 차례 군 입대를 연기했고, 86년 5월 28일 ‘수지(손가락) 절단’을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이처럼 상반된 설명 때문에 이 의원이 뭔가 진실을 숨기려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권력 2인자’의 부침=이 의원은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다니다 학생운동 등으로 두 번 제적됐으나 90년대 중반 법대로 재입학했다. 화공과 선배이자 스승인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시 부총장이었다.

그는 88년 4월 출감한 뒤 당시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의 보좌진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 이후 줄곧 노 대통령을 지킨 정통 ‘노무현 맨’으로 알려져 있으나 노 대통령이 총선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거푸 낙방해 원외 생활을 하는 동안 한때 정치 유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 대통령이 대권 꿈을 키운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설립을 주도했지만,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신한국당 김덕룡(金德龍) 경선후보의 캠프에서 일했고 97년 대선 직전 ‘조순(趙淳)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한나라당의 조순 총재 비서실 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98년 노 대통령이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다시 노 캠프에 합류한다. 노 대통령이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고배를 마신 뒤에는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사무실에 잠시 의탁하기도 했다.

2002년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이 의원은 노무현 캠프의 실질적 ‘2인자’로 각종 기획은 물론 궂은일까지 도맡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주요 인사에서도 상당한 입김을 발휘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지난해 10월 단행된 군 장성 인사에서 이 의원 출신고교 선배들의 장성 진급이 특히 눈에 띄었던 것도 이 의원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일부 주요 공기업 임원 임명 과정에도 이 의원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권력 실세까지 올라선 이 의원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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