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호]섣부른 ‘자주외교’로 풀 수 있을까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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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20분에 걸친 ‘강의’에도 불구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잘라 말했다. 잘못된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할 줄 모르는 나라가 어떻게 세계 정치의 주역이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서울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하며 그를 위해 기존의 ‘부담 공유(burden sharing)’ 방식을 ‘권력 공유(power sharing)’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일(對日) 정책의 기본 목표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의 미일관계는 퍼스트 네임을 부르며 밀월을 과시했던 로널드 레이건-나카소네 야스히로 시대를 능가한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얼마 전에는 외교, 국방장관 합동의 ‘2+2회의’를 열어 ‘세계 속의 동맹’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경시 부추기는 韓美균열▼

반면 한미동맹은 표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펜타곤의 구상에 ‘No’라고 답했다. 그러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한국이 알아서 스스로를 방위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국은 누가 적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치받았다. 이런 와중에 독도, 교과서 문제 등이 발생했고 미국은 일본 쪽에 힘을 실어 줬다. 한국에는 안타까운 결과였으나 바둑 해설 용어를 빌리자면 ‘거기는 그렇게 될 자리’였다.

여기서 우리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역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비중 설정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의 부실화는 미일동맹의 공고화를 가속시킬 수밖에 없다. 빈자리가 생기면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이제 우리는 자문자답해 봐야 한다. 미국과 얼굴을 붉히면서 독도, 교과서 문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현실적 방도는 있는가. 오히려 섣부른 자주외교로 인한 한미동맹의 표류는 일본의 한국 경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이는 그 대안으로 중국을 거론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과 멀어진 한국을 중국이 우대해 줄 거라는 기대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그만큼 저하되고 동북공정을 통한 평양 연고권 확보의 유혹을 높여 줄 뿐이다.

6자회담 구도를 두고 말이 많다. 3(한미일)-2(중러)-1(북)이냐, 2(미일)-3(한중러)-1(북)이냐가 초점이다.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고위 인사는 언젠가 사석에서 “겉으로는 전자, 속으로는 후자”라고 했다. 이런 것이 노 대통령이 말하는 ‘균형자’ 역할이라면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다. 미국이 한국을 ‘의심스러운 친구(suspicious friend)’로 보게 할 뿐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말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설명할 때 즐겨 쓴다. 아마추어는 의도를 말하지만 프로는 결과로 책임진다. 현 정권의 자주외교는 의도는 그럴싸하지만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투성이다.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의도의 순수성만으로는 풀기 힘든 고차원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균형자 역할’은 비현실적▼

지난주 통일부 공보관실에서 보낸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대일 신(新)독트린이었다. 언제부터 통일부가 일본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는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 약삭빠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 장관은 정작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 준비는 돼 있는 걸까.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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