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 1년]‘잊혀진 존재’에서 국민 시선 한몸에

  • 입력 2005년 3월 1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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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였던 헌법, 법치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한 차원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헌재는 한편으로 정치 세력의 견제 대상이 됐고 그로 인해 지켜져야 할 권위마저 훼손당하는 아픔도 겪고 있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국민의 시선은 헌재로 쏠렸다. 2개월 뒤인 5월 14일 탄핵안은 기각됐다. 윤영철(尹永哲) 헌재 소장이 결정문을 읽어 내려가는 장면은 해외에도 그대로 생중계됐다.

헌재의 기각 결정은 다른 선진국 국민에게도 ‘충격’을 줬다. 한국을 여전히 민주주의 후진국으로 여겼던 외국인들에게 한국이 법치주의의 모범을 보여줬기 때문. 여권은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극찬을 쏟아냈다. 국민 사이에서는 헌법과 헌법재판소에 관한 관심이 폭발했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그 이전 정치적 논리로 해결해온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국가기관 간 다툼이 헌법적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정치적 충돌을 단순히 정치 세력 간 다툼이 아니라 사법기관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헌재에는 더 많은 논란과 시련이 닥쳐왔다. 헌재는 지난해 8월 국가보안법 합헌 결정에 이어 10월 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여권은 헌재 결정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며 비난을 퍼부었다. 불과 5개월여 만에 헌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태도가 표변한 것. 여권 일각에선 헌법재판관 국민소환제 도입 주장에 이어 헌재 해체론까지 제기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정치적 공격은 헌재와 사법부에 큰 상처를 입혔다.

탄핵안 기각 결정 당시 9명의 재판관 중 1명이었던 김영일(金榮一) 재판관은 13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김 재판관을 필두로 내년까지 재판관 3분의 2에 해당하는 6명이 바뀐다. 헌재의 인적 구성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셈이다.

지난 한 해 영광과 상처를 한꺼번에 경험한 헌재는 요즘 첫 여성 공보연구관을 기용하는 등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헌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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