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北위기 ‘先軍’으론 극복못해

  • 입력 2005년 1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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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지도자 명의의 신년사를 발표한다. 전년을 회고하고 새해에 대한 국가의 비전을 밝히며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주류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은 당 군 청년조직의 3개 기관지 공동사설로 신년사를 대체해 왔다. 신뢰할 수 있는 내부 자료가 제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공동사설은 북한을 이해하는 일차적 자료다. 북한 전문가들은 많은 시간을 들여 노동신문과 함께 공동사설에 담긴 코드를 읽어 내는 고역을 감내해야 한다. 과거의 것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북한이 처한 대내외 상황에서 유추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문의 천편일률적인 내용에서 변화의 조짐을 발견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노동신문 등 3개 신문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1일 2005년의 국가 지도방침을 밝힌 공동사설을 발표했다. 이번 공동사설도 과거와 달라진 점을 발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평이한 내용이다. 평이하다는 그 자체가 가장 주목할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5년은 사실 북한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한 해다. 2기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중대한 핵 담판을 앞두고 있고 탈북자의 통제와 경제개혁이 절실한 긴박한 시점이지만 공동사설은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신년사설 새비전 못내놔▼

농업증산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북한경제가 처한 문제점을 해결할 고민이 결여돼 있다. 이번 공동사설에서 유일한 변화를 찾는다면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언급했던 작년의 사설과는 달리 핵문제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하고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낮추었다는 점이다. 2기 부시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당분간 관망하면서 다음 수를 생각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6자회담으로 조기 복귀할지 아니면 협상력 제고를 위해 모험적 조치를 취할지 계산 중일 것이다.

공동사설은 북한 당국이 갖는 수세적인 상황 인식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키워드를 찾는다면, 그것은 ‘선군’과 ‘민족공조’다. 스탈린식 주체경제 체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심각한 물자·식량 부족에 직면한 김정일 정권은 기능부전에 처한 당정을 대신해 전국적 네트워크와 물리력을 지닌 군에 의존하는 선군체제를 통해 체제의 안전을 꾀해 왔다. 최근 북한은 선군정치를 사상으로까지 격상시켜 규율과 충성에 입각한 군을 통해 주민의 동요를 막아 위기상황을 극복하려 하고 있으며, 공동사설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부터 ‘일심 단결하여 선군의 위력을 떨치자’다.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군의 논리로 무장해 수령(김정일)을 결사적으로 옹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내외 환경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위기관리를 위해선 선군체제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의존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공동사설은 또 민족공조를 크게 강조한다. 민족공조를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 공조로 체계화한 것이 눈에 띈다. 광복 60주년, 남북정상회담 5주년에 즈음하여 대대적인 대남 유화공세를 펼칠 게 예상된다. 여기엔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압력과 한미공조를 이완시키기 위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核해결없는 민족공조 경계▼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민족공조 주장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반전도 중요하지만, 반핵 없는 반전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공동사설이 강조하는 시대착오적인 선군사상과 민족공조로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핵 포기의 조속한 전략적 결단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우리의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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