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현두]행자부 ‘단체장 고발’ 눈치보기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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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許成寬) 행정자치부 장관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이틀째 파업을 벌인 16일 “불법 집단행동을 막지 않거나 방조한 자치단체장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오늘 내일 중 형사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 장관은 “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단체장을 구체적으로 거명할 수는 없지만 2명”이라고 말했다. 고발 대상이 민주노동당 소속의 이갑용(李甲用) 울산 동구청장과 이상범(李象範) 울산 북구청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행자부 직원은 없었다.

허 장관은 19일에도 경남대에서 특강을 하면서 “전공노 파업에 동조한 일부 단체장에 대한 고발 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며 관련 법률 검토가 끝난 상태”라고 다시 강조했다.

그런데 장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행자부는 지난주 두 구청장에 대한 고발을 울산시에 슬그머니 미뤄버렸다.

고발과 관련해 허 장관의 두 차례 발언에는 울산시가 고발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법률 검토 또한 울산시가 아닌 행자부 감사관실에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관할 광역단체인 울산시가 먼저 고발하도록 한 뒤 울산시가 고발하지 않으면 행자부가 고발하는 것이 순서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가 고발을 꺼리고 있는 게 분명한 데도 아직 행자부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편에선 장관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될 것이라는 얘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행자부의 이런 태도는 “정부가 두 구청장을 고발하는 즉시 행자부 장관에 대한 파면권고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민주노동당의 반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럼에도 행자부는 지난주 시도 행정부시장·부지사회의를 소집해 전공노 노조원에 대해 신속한 징계를 하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들이 하기 싫은 고발을 지자체에 미룬 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행자부가 자신들이 내린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자체에 불이익을 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현두 사회부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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