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용훈/무슨 이런 ‘교통혁명’이 있나

  • 입력 2004년 7월 2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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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교통혁명이 시작된다’는 서울시의 구호와는 달리 막상 버스체계 개편은 시행 첫날부터 시민들의 불만이 봇물 터지듯 했다. 서울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불편과 당혹스러움을 토로하는 글이 수천 건이나 올라왔고, 거리에선 졸지에 이방인 신세가 돼 버린 시민들이 처지가 다를 바 없는 도우미들과 온종일 씨름을 해야 했다.

▼‘버스체계 개편’ 준비부족 큰혼선▼

물론 이번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그 규모가 크고 어려운 작업이어서 어느 정도의 초기 혼선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시민들도 일정 부분 고통을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서울시는 시민들의 비난을 서운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개편 당일 새벽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혼선은 그 내용과 정도를 놓고 볼 때 이용자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대해선 이전부터 기대와 함께 우려가 상존해 왔다.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허둥대며 전용차로와 정류장을 만든 일이나 카드단말기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일 등을 전해 들으며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행여 버스체계 개편에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우려해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하며 기다려 왔다. 하지만 버스체계 개편과 관련한 의견 수렴 과정이 워낙 폐쇄적이어서 시민이나 전문가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졸속 개편과 파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서울시가 지난 2년 동안 고생하며 준비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편 당일 큰 혼선을 빚은 원인이 ‘준비 부족’으로 귀결된 것은 담당자들의 무성의보다는 시간의 절대 부족 때문이다. 카드시스템을 설계하고 장착하는 일이나 버스노선을 설계하고 중앙차로를 만드는 일, 그리고 버스관리체계(BMS)를 구축하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시간이 촉박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부에서 준비 부족을 이유로 실시시기를 재고할 것을 요청한 바도 있다. 내부에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있었다면 무리한 추진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특정일을 D데이로 정해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날의 상징적 의미와 시민들의 불편을 맞바꾼 꼴이 됐다. 특정 날짜에 연연하지 않고 일요일이나 휴가철 등 교통이 한산한 날을 택할 수도 있었고 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단행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번 교통체계 개편을 계기로 서울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체계 개편에 따라 시내버스도 준공영제로 전환되면서 적자가 나도 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하고 거기다 10%의 이윤도 보태 줘야 한다. 환승 시 무임승차를 해 준다고 시 담당자가 생색낼 일도 아니고 시민이 고마워할 이유도 없다. 결국은 시민이 낸 세금으로 그 비용을 메워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준비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의 기회비용’에 대해서는 구상권이 청구돼야 한다고 본다. 특히 체계 개편 시행 첫날 카드단말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생긴 지하철과 버스의 수입금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를 따져 문책해야 한다.

▼시민질책 겸손히 수용해야▼

시민이 더 이상 교통정책의 실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빠른 시일 안에 불합리한 지선 간선 노선을 재조정하고, 중앙차로 진입부와 단절 구간의 정체 해소 대책을 세우며, 간선과 지선 정류장의 병설로 인한 병목 현상을 개선하고,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새 노선에 대한 홍보방법을 바꿔야 한다. 특히 시민이 고통스러워하는 요금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도록 요금체계나 할인폭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결국 시민이다. 하향식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견과 질책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점진적인 방식으로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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