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익명의 그늘’에 숨은 외교차관

  • 입력 2004년 6월 24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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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외교통상부에서는 최영진(崔英鎭) 차관의 언론 브리핑을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최 차관은 가나무역 김선일씨(34)의 피랍 시점이 ‘17일→15일→지난달 31일’로 오락가락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브리핑에 앞서 기자들에게 방송 카메라를 사용하지 말 것과 자신의 이름을 익명 보도할 것을 요구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로서 국민적 의혹에 대한 해명을 굳이 ‘익명의 그늘’에 숨어 하겠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취재진은 당연히 이 요구를 거부했다.

더욱이 최 차관은 전날 밤 외교부를 전격 방문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김씨 석방교섭이 ‘희망적’이라는 보고를 할 때는 방송 카메라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실랑이 끝에 최 차관의 브리핑은 취소되고 결국 6시간 뒤에야 신봉길(申鳳吉) 대변인이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신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은 취재진의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취재진의 관심이 집중됐던 무장단체와의 석방교섭 경위에 대해 신 대변인은 “이슬람 지도자 등과 3차례 교섭했고,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납치세력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자 “해결이 잘 될 수 있는 방향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밝혔을 뿐, 중재에 나선 이슬람 지도자들이 제대로 메시지를 전했는지 또 이들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24일 브리핑에선 14명이 근무하는 주이라크 대사관이 57명뿐인 교민의 신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도마에 올랐다. 이에 신 대변인은 “현지 전화사정이 나빠 e메일로 교민안전을 챙겼다”며 주이라크 대사관이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게 5월 31일∼6월 20일에 세 차례 e메일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주이라크 대사관측이 사장에게만이 아니라 김선일씨에게도 직접 e메일을 보냈더라면 메일 수신 여부 확인기능을 통해 더 빨리 신변이상을 파악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외교부의 안이한 자세가 결국 김씨의 비극을 낳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김승련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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