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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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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 기관지 ‘시민과 변호사’ 4월호엔 얼마 전 퇴임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전하는 헌재 평의의 모습이 실렸다. 헌재 재판관 9명이 사건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평의는 철저히 비공개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다. 헌재에서 법률의 위헌 또는 탄핵 결정이 나려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5 대 4로 또는 4 대 5로 합헌 결정이 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1987년 개정헌법에서 헌재가 도입된 이후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예민하고 폭발성을 지닌 사건이다. 한쪽에서는 ‘탄핵무효’를 선언하고 다른 쪽에서는 ‘탄핵지지’를 외친다. 이렇게 국론이 갈라진 상태에서 헌재의 결정이 내려질 경우 어느 한쪽이 승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생긴다.
우리나라는 탄핵소추권과 심판권을 분리해 의회에서 소추를 하고 헌재에서 심판을 하는 대륙식(프랑스 독일) 법제를 가졌다. 영미(英美)식 탄핵제도는 의회에서 소추권과 심판권을 모두 갖고 있다. 영미식의 탄핵제도였다면 노 대통령은 국회의 3분의 2 이상 의결로 대통령직에서 이미 파면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정치적 심판의 의미를 지닌다. 헌재의 탄핵심판은 국회가 내린 정치적 심판의 정당성을 헌법과 법률에 비추어 한 번 더 따져보는 제도다.
탄핵소추안 발의직후 정당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던 헌법학자 허영 교수(명지대)는 헌재가 탄핵심판 사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노 대통령에게 경고를 하는 해법을 제시했다(본보 4월 8일자 보도). 허 교수는 헌재 자문위원이다. 그러나 허 교수가 제안한 해법을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탄핵심판을 형사재판에 비유하자면 사형(파면)과 무죄석방(기각)만 있지 중간 형량이 없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탄핵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면서 “총선 결과가 헌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사회일각에 존재한다. 정당의 해산 심판,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다루는 헌재가 정치상황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총선 민의’가 헌재의 결론을 좌우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총선은 탄핵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아니다.
헌재는 차기 국회가 구성되기 전에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사이 헌재 재판관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평의의 토론은 비밀에 부쳐지지만 재판관이 찬반 어느 쪽에 섰는지는 결정문을 통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된다.
탄핵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지만 국민이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헌재의 마지막 결정을 차분하게 지켜볼 일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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