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민간인 피랍]“이라크入國 강행 안전불감증 심각”

  • 입력 2004년 4월 9일 18시 43분


정부가 9일 한국인의 이라크 방문을 사실상 제한한 것은 이라크에서 한국인 납치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여권법에 따르면 정부가 여행을 제한할 목적으로 ‘특정국가’로 지정한 나라의 방문 희망자는 여행에 앞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나 방문지 주변국의 대사관에 반드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1995년 여권법 개정 이후 정부가 ‘특정국가’로 지정한 국가는 이라크가 처음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영사국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신고서가 제출되면 긴급상황 이외에는 방문 자제를 강력히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구호단체 직원 등 2명이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직후인 7일 이라크를 4단계로 돼 있는 여행제한 국가 목록에서 3단계로 지정했다. 이는 정부가 현지 체류 한국인들에게 ‘긴급용무가 아니면 출국하라’고 요청할 때 취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8일 납치된 허민영 목사 일행은 6, 7일 요르단에 체류할 때 현지 대사관에서 이라크 입국 자제를 요청받았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주 이라크대사관이 허 목사 일행에게서 8일 밤 전해들은 무장세력의 상황은 당초 파악됐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허 목사 일행은 무장세력이 외국인 30여명을 납치해 돈과 소지품을 빼앗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허 목사가 “우리는 의사, 간호사로 이라크를 돕기 위해 왔다”고 기지를 발휘한 뒤 스포츠마사지 경험을 활용해 억류범들에게 마사지 시범을 보이는 등의 방법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면 큰 위기를 겪을 수 있었다는 것이 외교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요청이 무시되는 안전불감증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제도적인 입국 차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외교부의 이라크 여행 제한은 한국인의 안전 문제가 이라크 추가파병 재검토 논란의 빌미가 되는 것을 예방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가 추가파병 철회에 따른 정치 경제적 파장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인 피해사건의 예방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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