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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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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각을 앞둔 요즘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장차관들에게 ‘저승사자’로 통한다. 그에게서 전화가 오면 혹시 경질인사를 통보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장차관이 적지 않다.
마음이 편치 못하기는 정 수석도 마찬가지다. 경질 통보는 인간적으로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최근 단행된 한 고위직 인사 때 정 수석은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고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겨우 입을 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경질 통보를 받은 장차관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어떤 장관은 “내가 꼭 역점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사안이 있었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내는 반면 “내가 뭐 미진한 게 있었나요”라며 따지는 장관도 더러 있다는 것. 경질 통보를 “정말 홀가분합니다, 이제 짐을 벗었습니다”라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공직자는 생각보다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는 게 인사수석실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임명사실을 알릴 때는 사정이 180도 다르다.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 멤버 가운데는 인선이 확정된 직후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내가 임명사실을 직접 통보하면 안 될까요”라고 정 수석에게 묻는 경우도 있다.
인사 내용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기자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일도 고역이다.
지난해 말 오명(吳明) 과학기술부 장관과 안병영(安秉永) 교육부총리를 인선할 때는 한달 전부터 인선작업을 벌였지만 중간에 새나갈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어 철저하게 입단속을 했다.
정 수석은 요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신임 장관과 전임 장관 부부를 함께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하는 것은 퇴임자를 배려하기 위해 정 수석이 낸 아이디어.
정 수석은 지난해 1월 당시 노 당선자로부터 인사보좌관을 제의받고 3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나중에 자신을 경질할 때 택시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를 듣고 ‘내가 잘렸구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미리 알려 줄 것. 둘째, 퇴임 장관들의 업적을 담은 공로패를 꼭 만들어줄 것. 셋째, 대통령이 퇴임 장관을 보낼 때 반드시 식사를 함께할 것.
이 가운데 80%는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 인사수석실의 전언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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