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화제스처에 北측 반색…입장변화 배경

  • 입력 2003년 10월 26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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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다자틀 내 안전보장’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것은 북한 핵문제에서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의 움직임은 예측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일단 이번에 보인 반응은 29일부터 31일까지 예정된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방북과 맞물려 2차 6자회담 개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반응의 배경=외교통상부 위성락(魏聖洛) 북미국장은 “북측의 주관심인 안전보장 문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최고위급에서 나왔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서화되어 나왔기 때문에 북한이 긍정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대북 안전보장을 제안한 것은 미국의 입장이 종전의 ‘선(先) 핵폐기’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고무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북한은 특히 한미일이 북한에 대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선 일단 대화의 접점을 찾는 것이 핵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은 다자틀을 통하기보다는 미국으로부터 직접 안전을 보장받기 원하고 있고 미국은 그 같은 구상엔 부정적이기 때문에 대북 안전보장 문제가 쉽게 타결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아직은 조심스럽다.

▽2차 6자회담 전망=북한의 반응은 2차 6자회담 개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커 보인다.

외무성 대변인의 언급은 1차 6자회담(8월 27∼29일) 이후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를 주장하는 등 상황 악화 움직임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북측 내부의 기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긍정적인 사태 진전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진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에 맞춰 한미일간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뭔가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에만 2차 6자회담에 앞선 한미일 협의를 갖는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 행정부 실무자들이 검토 중인 북한 안전보장 방안이 보다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어 각국의 2차 6자회담 전략이 마무리되면 한미일은 3자협의를 통해 회담 대책을 숙의하고 북한을 회담으로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의 긍정적인 입장 표명에 이어 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과정에서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8월 1차 회담 후 교착상태에 있는 2차 6자회담 개최문제는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美 언론반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다자틀 내 안전보장’ 제안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던 북한이 25일 태도를 바꿔 “고려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미국은 일단 조심스럽지만 기대감을 나타냈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24일 오후 늦게(한국시간 25일 오전) 뉴욕 채널(유엔 북한 대표부)을 통해 북한의 메시지를 전달받아 현재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6자회담에 조속히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도 북한의 입장표명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2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입장 표명을 ‘두드러진 변화(marked shift)’라면서 “북한이 발표대로 한다면 1년간의 미국과의 대치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북한의 발표를 “면밀하게 계산된 발언”이라며 “미국에 대한 통상적인 비판을 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특히 우방궈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북한 방문을 앞두고 북한의 입장 발표가 나온 것과 관련해 “이는 북한이 중국의 지시대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6자회담 재개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행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아시아-호주 순방을 수행했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 등이 25일 워싱턴에 돌아옴에 따라 27일 이후 뉴욕 채널과의 접촉 등을 통해 북한의 의도를 본격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29일부터 사흘 동안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 우방궈 상무위원장이 돌아오면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도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만큼 6자회담이 언제 재개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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