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6개월]<5·끝>종합평가 좌담

  • 입력 2003년 8월 26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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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참여정부 6개월은 3김(金)시대의 종막 이후 새로운 리더십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만만찮은 정치사회적 진통을 겪었다. 동아일보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와 공동으로 전문가와 함께 노무현 정부 6개월을 정치 경제 언론 등 각 분야에 대해 종합평가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리더십과 국가경영

▽정진영 교수=지난 6개월은 ‘혼돈’과 ‘혼란’의 시대였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 국민의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고 국민적 화합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많은 국민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정부는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의 무책임하고 혼란스러운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겨우겨우 돌아가고 있다. 이유는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 나름대로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연재물 목록▼

- <4>사회-언론분야
- <3>경제-노동 분야
- <2>정치…무너뜨린'권위'…무너진'리더쉽'
- <1>언론분야…“盧 국정수행 45점”

▽유재천 교수=노 정부는 국가경영철학이 없는 것 같다. 노 대통령 자신의 국가경영철학이 불분명해 국민은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확고한 인식을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보다는 ‘당파주의적 리더십’에 치중해 국민의 동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최병일 교수=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고 하는데 국민의 참여가 빠진 것 같다. 정권 창출에 도움을 주었던 일부 시민단체와 노조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치개혁, 보수언론 때리기에 두고 있어 지난 6개월 동안 ‘나라를 위해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책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야당이 ‘퇴임론’까지 들고 나올 정도로 국정 우선순위가 잘못 설정돼 있다.

▽김석준 교수=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취임 후 6개월 동안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리더십, 준비되지 않은 정권의 당연한 귀결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측근 386 권력실세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사회통합보다는 사회 각 분야를 주류와 비주류로 편 가르고 서로간에 끊임없는 갈등, 긴장관계를 만들고 있다. 그런 뒤 반대세력을 조금씩 끌어안는 ‘극적인 통치술’을 구사해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는 듯하다.

▽정 교수=이 정권이 보여주는 국가경영철학의 빈곤, 정책의 혼란상은 정권 담당세력이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현재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이 달라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권 담당자들은 ‘민족’ ‘자주’를 강조하지만 실제 북한 핵위기 해결에 있어서는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민족이나 자주만을 강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정치분야

▽정 교수=참여정부 6개월은 ‘정치의 실종시기’다. 이 정부가 대선기간 중 내세운 것은 새로운 정치였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정치개혁을 위해서 한 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여권 내 신당논의도 제대로 안 되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더 악화된 느낌이다. ‘하겠다’는 말은 하지만 행동은 없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 교수=정치개혁도 실종됐다.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권은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기 위해 전국정당 띄우기를 여러 가지로 시도하고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국정에너지를 이곳에만 쏟다보니 정치개혁 등 다른 분야를 챙길 여력이 없어진 것 같다.

▽유 교수=노 정부가 내세우는 정치개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치제도의 개혁인지 노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추종하는 정당을 만드는 것을 정치개혁으로 보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신당논의를 둘러싸고 씨름을 하다보니 정치자금법 정당법 선거법 등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외면하고 있다.

▽김 교수=민주당 내 신당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정치개혁도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 정부는 주도적으로 물밑에서 정치개혁을 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실체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청와대의 노 대통령 참모진들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으로 들어간 뒤 정치개혁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노사 분야

▽최 교수=노 정부는 분배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서 분배만을 강조하면 ‘파이’가 아예 없어진다. 한국 경제는 1년에 4% 성장해야 현상유지가 되는 구조다. 현재 1.9% 성장이라는 암울한 숫자까지 거론될 정도로 경제상황은 심각하다. 정부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달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사기’에 가깝다. 10년 뒤 2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선 매년 7%의 성장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 교수=한국 경제 질서를 보면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힘세고 목소리 큰 집단만이 이익을 얻고, 힘 없고 조직화되지 않은 집단은 ‘당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사회적 힘이 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유 교수=참여정부에서도 여전히 경제가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책임은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에도 있다. 국회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표를 의식해 민생경제 관련 안건 처리를 유보하고 있어 국가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 교수=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정책을 노조편향적으로 추진해선 안 된다. 법과 원칙을 훼손하면 외국인투자자는 빠져나가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그러면 일자리도 줄어들게 된다. 경제는 이윤을 만들려는 인센티브 구조에서 움직이는데 이를 다 파괴하니 심각한 상황이다.

▽김 교수=노 정부가 최근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노 정부는 초기에 ‘노동자는 약자다. 사용자는 양보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최근 ‘소수의 대기업 노동자들이 다수의 노동자 위에 군림한다’는 인식으로 변했다.

▽최 교수=정부는 동북아중심국가 건설을 외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 동북아 허브를 위해선 금융자유화가 필수적인데 이것조차 안 되고 있다. 재벌개혁을 시장개혁이란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으나 이념적으로 편향돼 실용성이 없다. 일각에선 자본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새로운 성장동력산업 10개를 지정했는데 정부가 나서 10개를 골라 몰아준다는 것은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언론분야

▽유 교수=참여정부는 언론정책은 없고 언론대책만 있다. 정부의 언론대책은 대통령의 재야시절 형성된 편향적인 언론관에 입각해 있다. 언론대책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소위 ‘조중동’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방송과 일부 신문, 온라인 미디어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로 대별된다. 적과 동지를 분명히 구별해 접근하고 있다. 결국 조중동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데 모든 정책이 집중되고 있다. 노 정부의 언론관은 언론의 자유 신장이 아니라 언론을 우호적인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부정적인 접근방식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최 교수=노 대통령 참모진은 언론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말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일정부분 언론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언론은 책임도 중요하지만 보도, 폭로하는 기능이 우선시 된다. 이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언론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언론을 공격하고 분할 통치해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노 정부는 특히 조중동을 문제 삼는데 정부가 통제하는 방송의 편향성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 교수=언론에 대한 편파적인 태도와 이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다. 노 대통령의 언론대응을 통해 진실이 알려지기보단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대통령이 언론대응에만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대통령의 권위는 더 떨어지게 될 것이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언론대책에 대해 평가가 양분되고 있다. 사회 주류에 있는 사람들은 노 대통령의 언론대책을 가장 잘못하는 분야라고 비판하지만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는 계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정 언론에 대해 공세를 취하면 취할수록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신선하다’며 결집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이 야당의원과 언론사를 상대로 자신의 사적 명예가 훼손됐다며 손배소를 제기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권력과 기구의 사유화에 해당된다.

▽유 교수=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여러 정부기관에도 파급되고 있다. 올바른 비판에 대해서도 정정보도나 반론권 요청을 남용하고 있어 걱정이다.

▽김 교수=공식 업무시간에 반론권 준비나 소송을 준비하는 것이 곧 국가기구의 사유화다. 대통령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기관과 준 공공기구의 요즘 대(對)언론관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정리=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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