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6개월]<3>경제-노동 분야

  • 입력 2003년 8월 2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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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율의 단계적 인하를 통해 기업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김진표 경제부총리·3월 3일 경제장관회의)

“법인세율 인하는 전체적인 재정구조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노무현 대통령·3월 5일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새 정부 들어 발표된 주요 경제정책은 불과 한 달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제부총리의 말과 청와대에서 나오는 말이 달랐다. 같은 경제부처 안에서도 마찰이 적지 않았다. 경제부처와 비(非)경제부처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경제는 멍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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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정치…무너뜨린'권위'…무너진'리더쉽'
- <1>언론분야…“盧 국정수행 45점”

▽경제정책 혼선과 신뢰 추락=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월 27일 취임식에서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면 부동산투기, 가계대출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10일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경제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건전재정에만 얽매일 수는 없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기획예산처도 추경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4조4775억원의 추경 편성안이 확정돼 지난달 15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미 경제는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만큼 떨어진 뒤였다.

스크린쿼터 축소, 국민연금 운용 주체, 담뱃값 인상, 경제 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 설치 등을 둘러싸고는 경제부처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이 대립했다.

첨예한 노사대립으로 국가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노동부는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부처”라는 노동부 장관의 발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주요 경제정책은 자주 표류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행된 정책도 경기부양책이나 노사관계 대응처럼 실기(失期)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부 경제정책이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는 지표는 많다. 올 2·4분기(4∼6월) 경제성장률은 작년 동기 대비 1.9%로 추락했다. 특히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에 그쳤다. 기업과 가계의 현장 체감경기는 더 나쁘다.

김종인(金鍾仁)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흔히 시스템이 잘못돼서 정책이 안 된다고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자질 문제”라며 “새 정부의 경제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말을 해서 될 것 같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아직도 산적한 경제현안=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대표적인 사안 가운데 하나는 대기업 정책 가운데 가장 민감한 출자총액제한제도다.

예외규정을 줄여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재경부 입장이 부딪쳐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는 일단 덮어두고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재경부 등 경제부처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정책 가운데 일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반기에만 3조5000억원이 투자될 삼성전자 화성공장 증설과 1500억원이 들어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증설도 지방분권 논리에 막혀 언제 허가가 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하반기부터 경차(輕車)에 붙는 취득세 등록세를 깎아주기로 한 방안도 지방세수 감소를 우려한 행정자치부의 반대로 지지부진이다.

여기에다 최근 다소 개선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부 일각의 반(反)기업 정서와 ‘결과에 대한 평등’ 집착에 대해 산업계는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신뢰 있는 정책을=경제는 시시각각 변하고 경제정책도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토론은 무성했는데 결론이 없었다. 현 정부의 행태를 두고 ‘위원회 공화국’이니,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NATO(No Action, Talk Only)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오석(玄旿錫) 무역연구소 소장은 “아직까지 한국 경제에서 정부 정책이 가지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정부가 시장에 시그널을 줄 때는 아주 신중하고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문석(吳文碩)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은 “정부 초기에 성장과 분배를 놓고 논란과 시행착오를 겪는 등 정부의 불확실성이 설비투자 감소와 경기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우선 경제부터 살리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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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기자 kkh@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경제팀 운영 제대로 되나▼

노무현(盧武鉉) 정부 첫 경제팀은 내각의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청와대의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정책실장이라는 ‘투톱 체제’로 출범했다.

경제관료 출신의 현실을 아는 정책과 교수 출신의 이상적인 정책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경제팀 성적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책 혼선이 훨씬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출범 100일 직후인 6월 11일 첫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전직 경제부총리 등 ‘경제 원로’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경제팀의 손발이 안 맞아 경제정책이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든지, 아니면 차라리 이전의 경제수석비서관 제도를 다시 살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문이 쏟아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2분과 간사를 맡았던 김대환(金大煥) 인하대 교수도 “사공은 늘었는데 배가 앞으로 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것 같다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출범 150일이 지난 직후 본보 경제부가 국책·민간경제연구소, 대학교수 등 경제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책 평가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경제정책의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전문성 부족과 리더십 부재에 따른 정책혼선’이 꼽혔다.

정창영(鄭暢泳·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어떤 나라에서도 부처간 정책 조정 기능이 있어야 한다”며 “새 정부 들어서는 부처간 정책을 조율할 컨트롤 타워가 없었는데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 부처의 한 간부는 “청와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저런 위원회의 이름으로 일선 부처의 발목이나 안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올 노사분규 하루 1건이상씩 발생▼

7월 23일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주5일 근무를 요구하면서 집회를 갖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노사관계에 있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사회적 힘의 균형’을 화두로 삼았다. 경영계에 비해 노동계의 힘이 약한 만큼 5년간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

1월 9일 시작된 두산중공업 파업 사태는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이 현지에 내려가 적극 중재한 덕에 62일 만에 노조의 승리로 끝났다.

노동계는 ‘정부는 우리 편’이라고 해석하고 참았던 각종 요구를 봇물처럼 터뜨렸다. 특히 정부를 상대로 한 노-정(勞-政) 갈등이 많이 표출됐다.

철도노조는 4월 20일 파업을 예고하고 1인 승무제 도입 철회, 철도 민영화 반대,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파업 직전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말았다.

곧이어 화물운송 지입차주들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나섰다. 정부는 이들의 움직임을 무시하다 5월 2일 경북 포항시를 필두로 시작된 집단행동에 놀라 뒤늦게 노-정 협상을 벌여 화물차에 대한 경유세 인상분 전액 보조, 심야 통행료 인하, 다단계 알선 근절 등 11개항에 합의했다.

이후 조흥은행 노조가 일괄매각 반대를 요구하며 정치성 파업을 벌이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 연가투쟁을 강행하자 정부 일각에서도 ‘법과 원칙’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도 “정부를 길들이려는 파업을 하는 노조에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6월 23일 지방노동관서 근로감독관 특강), “노조 특혜는 해소돼야 한다”(6월 27일 포브스 편집장과의 대담) 등의 발언을 잇달아 했다.

결국 6월 28일 철도노조가 철도구조개혁법안 입법저지를 위한 2차 파업을 벌이자 정부는 즉각 농성장에 경찰력을 투입해 해산시키고 참가자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그러나 한 번 물꼬가 트인 노동계의 요구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아 6월 이후에는 임금 및 단체협상의 형태를 띠었지만 주5일 근무제, 비정규직 차별 철폐, 근골격계 질환 대책 마련 등 노동현안을 담은 파업이 급증했다. 화물연대도 21일부터 2차 운송거부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21일까지 전국적으로 271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늘었다. 분규 참가자는 무려 52% 급증한 12만3710명으로 ‘파업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성희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노사관계 로드맵’과 공무원노조 법안, 퇴직연금제 법안 등의 입법을 둘러싸고 노-정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데다 정치권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올 주요 노사분쟁 일지▼

△1.9∼3.12 두산중공업=노동부 적극 중재

△4.20 철도=정부,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파업 직전 타결

△5.2∼15 화물연대=노-정, 경유세 인상분 전액 보조 등 11개항 합의

△6.18∼22 조흥은행=재정경제부 적극 개입

△6.21 전교조 연가투쟁=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발

△6.28∼7.1 철도 2차=정부, 경찰력 투입, 참가자 징계 등 강력 대응

△6.26∼8.5 현대자동차=주5일제 요구 등. 정부, 긴급조정권 검토

△8.21∼ 화물연대 2차=운송료 인상 등 요구. 정부, 강경 대응방침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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