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언론비판 파문]“언론에 자존심 안죽어…下野 안한다”

  • 입력 2003년 8월 3일 18시 40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일 장차관급과 대통령비서실 고위 참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차 국정토론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언론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공직자들로 하여금 ‘자리를 걸고’ 언론에 대해 맞설 것을 독려했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 요지.

▽“공무원 기자접촉, 권장할 것 못 된다”=(정부가) 사전배경 설명 잘하고 기자를 적극 접촉한다고 해도 이런저런 질문을 유도하고, 꼬투리 달린 질문을 통해 거꾸로 이야기되고 보도된다. 1시간 동안 열나게 강의했는데 인용한 게 더 크게 보도된다. 예를 들면 ‘개××’ 같은 것이다. 적극적인 접촉이 뭔가. 기자들에게 술 밥 사는 것인가. 득될 게 없다. 적극 권장할 것 못 된다. 소줏집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 얘기하다 보면 그 다음날 시커멓게 나온다. 기자들 취재 안 해도 비판기사 쓴다. 언론인 출신이 반드시 홍보 전문가가 아니다. 언론인 출신 가운데 질 안 좋은 사람도 많다. (공보관 채용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언론갈등, 개인 오기(傲氣) 차원 아니다”=언론 얘기하면서 ‘너 개인적인 싸움 아니냐’, ‘너 오기로 끝까지 가자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까 봐 신경 쓰인다. 개인적 오기가 아니다. ‘언론과 싸워서 뭐 하겠느냐’, ‘이길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끊임없이 들었다. 가까운 참모들로부터 많이 들었을 때 주저앉고 싶었다. 개인적인 문제라면 벌써 포기했다. 처음 언론과의 갈등 시작이 국회의원 되기 전인데 시작은 가치의 충돌이었다. 파업현장, 소외된 사람, 약자 쫓아다니던 시기였는데 사실을 전부 왜곡시킨다. 참 심했다고 할, 많은 사례가 있다. 전에 문귀동 성추행 사건(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경우 정부발표와 언론발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싹터왔던 갈등이었다.

▽“부당하게 짓밟는 언론의 횡포”=언론이 부당하게 짓밟고, 항의한다고 더 밟고, 가족 뒷조사하고 집중적으로 조지고 이런 횡포를 용납할 수 없다. 이 횡포에 맞설 용기가 없으면 그만둬라. 언론제도에서 중요한 건 공정한 시장경쟁을 언론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으로 언론을 시민의 선택에 맡겨라? 공정한 경쟁이 되고 시민선택에 맡겨야지…. 의견전달의 도구라는 신문이야말로 상품의 품질로 평가돼야 하고, 다른 걸로 평가 안 되게 해야 한다. 이미 법이 있으므로 법을 단호하게 집행해야 한다.

▽“장관이 부당하게 맞아서 그만두는 일은 없다”=한마디로 자존심과 인내심 안 죽는다. 정부, 무너지지 않는다. 대통령, 하야하지 않는다. 장관이 언론에 부당하게 맞아서 그만두는 일은 없다. 전에 있었는지 몰라도 이제 그런 일 없다. 제1부속실장 사표수리 당장 안 한 것은 ‘수리 안 하면 후속보도 나오고 그걸로 청와대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권고 때문이다. 이유가 그거라면 수리할 수가 없다. 쉽사리 굴복 안 한다. 당당히 가자.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신문 사설-칼럼까지 비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일 국정토론회에서 언론에 대해 또다시 강성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은 일차적으로 최근의 국정난맥과 관련한 비판적 보도에 대한 불만 표시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언론 고유의 기능인 편집권까지 거론하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제 설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보도 태도’를 특히 문제 삼았다. 이전까지의 대언론 불만이 주로 ‘사실관계’의 잘잘못을 지적한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토론회에서 일부 관료들이 “대통령이 세 번의 외교활동을 통해 성과가 좋았으나 우리 언론은 본질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언론의 ‘인색한 평가’에 불만을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동북아중심 국가 건설과 2만달러 달성 같은 핵심의제를 주창하는데도 언론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트집 잡는 ‘흠집 내기’에 더 열중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언론 불만의 이면에는 언론이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내재돼 있다는 설명인 셈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최근 들어 팩트(사실관계)와 관련한 오보대응 차원이 아니라 사설과 칼럼 또는 외부전문가 기고 등 ‘의견’까지 문제 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단순 사실관계가 틀린 스트레이트 기사보다 사설이나 칼럼이 더 악질적이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특권 횡포’를 지적하며 “가족들의 ‘뒷조사’를 하면서 너 한번 ‘맛볼래’라고 한다”고 한 것은 친형인 노건평(盧健平)씨의 부동산 논란, 후원 회장이었던 이기명(李基明)씨의 용인 부동산 투기의혹 보도 등에 대한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구한 것은 ‘신문시장이 자본력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 관계자들은 신문이 내용에 의해 평가받기보다는 경품 등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 왔다.

이에 대해 언론학계 등에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신문의 시장점유율을 줄이고,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의 시장점유율을 늘리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는 의구심을 보여 왔다.

무엇보다 신문은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기사로 상품성을 평가받는 시장원칙을 엄정하게 적용받고 있는 업종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 같은 시각은 단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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