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외국인 한국경제 진단

  • 입력 2003년 6월 30일 20시 05분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박경모기자
3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국내에서 가진 첫 대규모 한국투자설명회였다.

이날 회의에는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 국제기구의 주요 인사와 해외 석학(碩學)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에 정부가 밝힌 경제정책 운용 방안은 노조에 대한 엄격한 법과 원칙을 제외하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적었다는 평이 많다.

반면 외국인 참석자들로부터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 운용 원칙 자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정부, “경기 부양에 역점”=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집행, 감세(減稅)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금융·세제 지원을 통한 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외국인 기업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김 경제부총리는 또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구조개혁을 위해 중장기 목표와 단계적 추진 일정을 담은 ‘시장 개혁 3개년 계획’을 조만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구조개혁의 최종 목표는 시장이 정부의 규제와 감시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 집단소송제와 새 회계제도를 도입해 시장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사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으려고 파업부터 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철도노조에 즉각 공권력을 투입했다”며 “대화와 타협을 하려는 노조는 지원하지만 힘으로 밀어붙이는 노조에는 법과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 “형평 집착이 문제”=외국인 참석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운용이 형평과 분배를 중시한 나머지 성장을 도외시하고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니얼 보글러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담당 편집국장은 조흥은행 노조 파업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대처 방안을 지적하며 “정부는 시장 친화적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 주어야 하며 진정한 형평은 결과의 형평이 아닌 기회의 형평”이라고 꼬집었다.

미시간대 김응한 교수는 “한국 경제는 지난 100일 동안 완벽한 폭풍 속에 있었고 또 다른 폭풍이 몰려 올 가능성이 높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불확실성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이 불확실성은 형평과 분배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인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공정성과 효율성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경제의 파이는 작아진다”며 “마라톤을 할 때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모두가 꼴찌에 맞춰 뛰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많은 참석자들은 지금 한국 정부의 경제 운용 방안은 성장 지향에 맞춰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배로 교수는 “한국의 현 정책과 제도가 지속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매년 2%포인트씩 감소할 것”이라며 즉각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부 실천방안으로 △친(親)노조적 태도 지양 △기업소유구조의 투명성 확보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 제한 △교육의 질 향상 등을 제시했다.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운용 방안
단기 정책 방향-금융·세제 혜택 제공해 기업투자 지원
-외국인 기업 세제 혜택 확대
-제조업 중심 자유무역지대와 물류산업 중심 면세지역 설치
-자금 운용 규제 완화와 투자자 보호 위한 자산관리법 발효
-소액주주집단소송제 도입, 기업회계시스템 개혁
-법과 원칙에 따른 노사관계 정립
중장기 비전과
추진전략
-시장 개혁 3개년 계획 수립
-국가 균형발전 5개년 계획 수립,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유망산업 개발 육성
-일자리 창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향상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 자영업차 소득 파악률 제고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존스턴 OECD 사무총장 ▼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지식기반 경제의 필수 요소입니다.”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사진)은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Hub)’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존스턴 사무총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외국기업이 직접 투자를 할 때 판단을 하는 중요한 잣대”라며 “노사정위원회와 실직보험 등을 활용해 노동시장의 불안요소를 없애야 한다”고 충고했다.

“OEC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직원 한 명을 해고하는 비용이 다른 회원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유연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이야기죠.”

그는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간 7%대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보인 것은 OECD 30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며 97년 ―5%에서 이듬해 6%로 반전한 것도 OECD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거시경제 정책만으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으며 새로운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개별 가계의 불안정성을 개선해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의 교육체계는 (정부의) 중앙통제 수준이 높은 편”이라며 “이 같은 체계가 미래의 지식기반 경제의 촉진에도 적합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학교운영에 대한 자율성과 교과과정 선택에서 다양성을 보장해야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

이와 함께 “한국은 지정학적인 입지와 뛰어난 노동력, 정보통신 등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나 국제적인 중심지로서 필요한 일부 서비스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경쟁국에 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정부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 △정부 규제와 조세체계 등에서 매우 취약하다는 것. 또 인천공항과 부산, 광양항 외에도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해야 거대도시인 서울에 가해지는 압력을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약 4%, 내년 이후 6∼7%의 성장률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하지만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많아 예전의 성장률을 회복하는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카키바라 게이오大교수 ▼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는 ‘탈(脫)인플레이션(Disinflation) 시대’에 경제성장의 장애물이 될 뿐이다.”

일본 대장성 재무관을 지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神原英資·사진)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민간기업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됐으나 지금은 ‘개혁 피로감(reform fatigue)’이 역력하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대장성 재무관으로 일하면서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외환시장에 영향력이 컸고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경제중심’ 정책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3국의 관계에 달려 있으며 한국은 이들 나라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좀 더 공격적으로 세계화에 나서야 ‘동북아의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세계경제 상황에 대해 “초저금리와 기술 혁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율이 점차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미국 경제가 올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힘입어 최근 달러가 강세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유로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연말에 유로 대(對) 달러는 1.22 대 1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엔-달러 환율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달러당 115엔대를 지키고 있으나 앞으로 1, 2주 안에 120엔까지 갈 가능성이 높으며 연말에는 115∼125엔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가능성과 관련, “대규모 부실자산과 국영기업의 경영악화, 소득 재분배 문제 등에 직면한 중국은 연 7∼8%씩 고성장을 해야 하므로 평가절상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에 대해서는 “기업의 투자 부족으로 장기 침체에 빠졌으나 최근 1, 2년 사이에 수출을 주도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수익이 나아지고 있다”며 “거시경제 상황은 그대로지만 미시경제의 조건은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나이스 도이체방크 亞본부회장 ▼

휴버트 나이스 도이체방크 아시아본부 회장(사진)도 최근 한국 노조의 잇따른 파업을 ‘불행한 일’이라며 우려했다.

나이스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는 한국 경제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변화의 속도를 낮추는 불안 요소”라며 “다만 이는 현 정부의 ‘친(親)노조 성향’ 때문이 아니라 노조와 기업, 정부 등 3자의 협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정(勞-使-政)의 협력이 부족해진 것은 일종의 ‘위기감 결핍’이며 외환위기 때처럼 위기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3자 모두 희생을 통한 협력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으로 구제금융협상팀 단장을 맡았던 나이스 회장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4%로 내다봤다.

그는 “외국 기관들이 한국의 성장률을 하향조정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보여줬던 것처럼 6∼7%의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내년에는 잠재력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이스 회장은 ‘가계부채의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순환적인 경제흐름의 한 국면’이라며 “정부가 이 과정에서 시장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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