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조흥銀 파업]막판 타협이냐 경찰 투입이냐

  • 입력 2003년 6월 20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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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파업사태가 주말을 고비로 ‘공권력 투입’과 ‘막판 대타협’ 중 하나로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미 공식적으로 매각 결정이 난 상태에서 ‘파업을 통한 매각저지’를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조흥은행 노조도 알고 있는 데다 정부와 신한지주 역시 시간을 더 끌면 손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20일 새벽 정부와 신한금융지주회사, 한국노총, 금융산업노조 사이의 1차 협상은 조흥은행 노조의 돌연한 ‘협상 중단’ 요청으로 일단 결렬됐다.

하지만 정부와 노조 양측은 모두 2차 협상 창구를 열어둔 데다 ‘매각불가’를 주장했던 노조도 협상의지를 밝히고 있어 막판 타협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금융계 일부에서는 노조가 정부 및 신한지주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이끌어내려는 강·온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용득(李龍得) 금융산업 노조위원장은 이날 “협상 중단은 조흥은행 노조의 요청에 따른 것이지만 매각 이후의 현안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말해 협상에서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조흥은행 노조의 요청이 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시 협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진표(金振杓) 경제 부총리도 “협상결렬은 아니며 협상의 일시 중단”이라며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노조는 실무 차원에서 정부 및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들과 핵심 쟁점을 놓고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와 공권력 투입 가능성=조흥은행에 따르면 파업 3일째를 맞아 예금 인출 사태가 이어지면서 20일 자금 부족액 규모가 4조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조흥은행은 한국은행에 긴급 유동성 지원을 요청, 환매조건부 채권(RP) 거래방식으로 2조원을 지원받고 콜머니로 4조25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17일 이후 20일까지의 예금(종금 계정 포함) 인출 규모는 모두 6조2900억원으로 집계됐다. 조흥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

평소 인력의 30% 정도만이 전산망을 운용하고 있는 전산센터에서 직원의 추가 이탈 가능성도 있어 ‘전산 다운’이라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 “경찰력을 투입한다고 해서 전산센터가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직은 공권력 투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노조원들이 영업 중인 객장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업무를 방해하고, 전산실을 점거할 경우에는 경찰력을 투입해 관련자를 즉각 검거한다는 방침이다.

▽협상 쟁점은 무엇인가=신한지주와 조흥은행 노조는 △고용안정 △복지후생 △통합 후 경영체계 △통합방식 △브랜드 등 크게 다섯 부문으로 나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 중 고용안정과 복지후생은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으나 경영체계와 브랜드 등 두 가지 이슈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고용안정은 합병 후에도 노사간 합의가 없는 강제적 구조조정은 자제하고 희망·명예퇴직 등은 최대한 노사간 합의로 실시한다는 것. 현재의 두 은행간 인력구조 및 구성비율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다.

복지후생 부문에선 인수 후 조흥은행 직원의 임금을 신한은행 수준으로 곧바로 올려주되 신한지주가 굿모닝증권을 인수할 때와 같이 양 은행 직원에게 상당금액의 통합위로금을 지급하라는 것.

경영체계와 관련해서는 양측이 같은 수로 합병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했다.

그러나 합병 후 지주회사에 부회장 직책을 신설, 조흥은행 출신 임원을 임명해야 한다는 조흥은행 노조의 주장에 신한지주는 난감해하고 있다.

조흥은행 파업 관련 고객 문의전화
전산망 가동 등 영업기획부 2010-2296점포운영실 2010-2818(2434)
입출금, 송금 및 자동이체상품운영부 3700-4030(4502)
대출 및 당좌, 어음거래여신기획부 2010-2340(2437)
외환거래외환업무부 2010-2690(2920)
신용카드카드사업부 3700-4986
종합고객만족실 2010-2265(2308)
지역번호는 서울(02). 괄호 안은 추가 번호. -자료:금융감독원

신한금융지주와 조흥은행 노조의 협상쟁점
쟁점신한조흥
합병시기인수 후 2년간 독립자회사인수 후 즉시 대등합병
합병은행명추후 검토CSHB 조흥금융지주회사 또는 CSHB 조흥은행
합병은행장신한 임원 선임조흥 임원 선임
지주사 임원조흥은행 인사 참여가능신한 조흥 인사를 50 대 50지주회사 부회장을 신설, 조흥 인사 임명
고용승계2년간 강제해고 없다3년간 고용보장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주말 전산망중단” 발표했다 번복…밤새 혼선▼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조흥은행 전산망이 가동중단될 위기에 몰렸다.

전산센터에 남아있는 직원들의 체력이 한계에 이른데다 전산장애마저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흥은행 노조는 전산망 다운에 대한 국민적 비난을 감안, 직원 28명을 보내 전산장애를 고치는데 나섰다. 이들은 전산시스템을 고친후 다음주 월요일 파업에 복귀할 예정이다.

그러나 조흥은행이 은행장명의로 21~22일 전산망 가동중단을 발표했다가 번복한 것은 전산센터의 유지능력이 한계에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20일밤 전산장애 복구작업이 완료되지 않으면 주말에 조흥은행을 통한 모든 온라인거래가 불가능해져 토요일에도 은행업무를 봐야 하는 기업과 개인의 피해가 클 전망이다.

이같은 이상기류는 이날 오전부터 감지됐다. 전날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조흥은행 매각을 최종 결정하자 전산센터에 남아있던 정규인력 25명이 추가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71명의 남은 인력 중 협력업체 직원 48명과 금융감독원 파견직원 6명을 제외하면 실제 전산운용인력은 17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7명은 관리직, 10명은 비정규직 보조사원으로 전산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전산용지를 갈아끼우고 파일을 정리하는 등의 단순업무만 가능하다. 이들은 파업이 시작된 이후 4일째 하루 24시간 근무해 더 이상 피로를 견디지 못해 탈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20일 오후부터 전산장애가 발생하기 시작해 인터넷뱅킹 폰뱅킹 현금자동화기기(CD/ATM) 등 개인고객의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나 외환 여신 전산망에 관한 내부 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조흥은행 고위관계자는 "전산요원 부족으로 일부 업무에 장애가 있어서 주말에 업무를 중단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금융감독원이 정상가동을 강력히 요구했다"며 "전산센터는 이미 한계상황에 와있어 대체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주말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파업초기 다른 은행의 전산직원을 대체인력으로 확보하지 않아 초기대응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해외 투자전문가 시각▼

조흥은행의 파업에 대해 해외 투자 전문가들은 “이번 파업은 경제 테러이며 정부가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도미니크 드워프레코트 박사(영국 바클레이즈 캐피털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디 시에 박사(모건스탠리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오가와 다카히라 이사(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아시아 국가신용평가 책임자) 등 해외 투자 전문가들은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번 파업의 정당성, 은행민영화와 정부 태도 등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노동시장의 미래와 관련한 스티븐 로치 박사(모건스탠리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의견도 소개한다.

▽파업으로 은행가치 파괴=드워프레코트 박사는 “이번 파업은 경제 테러리즘이다. 은행 영업을 방해해 은행의 영업가치와 자신들의 직업 존립기반을 파괴한다”며 “민주사회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재산권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시에 박사는 “한국 경제규모로 볼 때 은행이 지나치게 많다”며 “합병은 필수적이고 신한-조흥간 합병이 없었다면 다른 은행간 합병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합병이 일어날 때 인원감축은 필수적”이라며 “예컨대 인도에서는 과도한 잉여인력에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 때문에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한 첨단 설비 도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영화 밀고 나가야=시에 박사는 “노동자의 저항은 한국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 군살을 빼려고 노력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버티는 것이며 그러지 않으면 선진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오가와 이사도 “국제경쟁력과 금융기법의 발전을 위해 민간에 은행을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정부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노동법이 (노조 편이 아니라)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에게 확신시켜 줘야 하며, 노조의 행동이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을 후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악의 사태는 없을 듯=오가와 이사는 “이전에도 몇 차례 금융기관 민영화 계획이 후퇴한 적이 있기 때문에 민영화 일정이 늦어진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한국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조흥은행의 존립위기로까지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조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퇴조=로치 박사는 “미국의 노조가입 노동자의 비율이 33%(1950년대)→24%(1979년)→13%(2002년말 현재)로 줄어들고 있다”며 “작년과 올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노조 파업은 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합의였던 고용안정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 1000만개의 90%가 파트타임과 계약직이었다는 것. 한국의 노조 영향력도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김용기기자·국제정치경제학박사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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