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訪日]“과거사 언급없는 만찬 盧대통령이 첫 사례”

  • 입력 2003년 6월 7일 0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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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의 과거사 관련 언급과 한국 대통령의 답사
사과한 천황천황 만찬사의 과거사 언급한국 대통령의 답사
히로히토(裕仁)
1984년9월6일
우리나라는 귀국과의 교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의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전두환 대통령, “양국간에 있었던 불행한 과거는 이제 보다 밝고 가까운 한일간의 미래를 여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키히토(明仁)
19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痛惜)의 념(念)’을 금할 수 없다

노태우 대통령, “이제 우리 두 나라가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 신뢰하는 우방이 되기 위해 양국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어온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공동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키히토
1994년3월24일
본인은 몇 해 전 깊은 슬픔을 표명한 바 있으나 지금도 변함없는 심정을 간직하고 있다. 전후 우리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귀국 국민과의 사이에 확고한 신뢰와 우정을 구축하고자 노력해 왔다김영삼 대통령, “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 된다”
아키히토
1998년10월7일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깊은 슬픔은 항상 본인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한일 양국간의 다양한 협력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아키히토
2003년6월6일
양국의 우호관계가 발전해 온 배경에는 많은 분들의 고생과 노력의 축적이 있었다. 우리들은 이 점을 생각해 예부터 양국의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에 대해 늘 진실을 찾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양국민 사이의 유대를 흔들림 없는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나는 전후세대의 첫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깊고 오랜 양국의 우호친선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오늘 일본을 방문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첫날인 6일 아키히토(明仁) 천황과 면담하고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일본 참의원이 이날 유사법제안을 처리해 국내에서 비판여론이 비등했지만, 노 대통령은 당초 일정대로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저녁 황궁에서 열린 아키히토 천황 부부 주최의 국빈만찬에 참석한 노 대통령은 만찬 답사에서 “전후(戰後) 세대의 첫 대한민국 대통령”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미래’라는 단어를 5차례나 써가며 양국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다.

오후 8시부터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만찬에는 한국측에서 공식수행원과 특별수행원, 일본측에서 나루히토(德仁) 황태자 부부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등 3부 요인, 주일 외교사절 등 모두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에 대한 공식 환영식이 영빈관 앞 광장에서 오후 3시부터 약 15분간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영빈관 로비에서 아키히토 천황 내외의 환영을 받은 노 대통령 부부는 천황의 소개로 황태자 부부를 비롯한 일본 황족들과 인사를 나눈 데 이어 고이즈미 총리와 대통령 취임식 이후 100여일 만에 재회했다.

노 대통령은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음악대가 애국가와 일본국가인 기미가요를 연주한 뒤 단상에 올라 의장단의 사열을 했다.

○…노 대통령은 아키히토 천황의 승용차에 함께 탑승해 황궁으로 자리를 옮겨 30분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아키히토 천황에게 “한국은 오늘이 현충일인데,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고, 아키히토 천황은 “이런 날에 일본에 와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일본 천황의 한국 방문 초청 문제에 대해 “이미 우리 정부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시에 초청을 했고, 이것이 아직 유효하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천황께서 역사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자, 아키히토 천황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백제와 신라시대에 일본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 부부와 아키히토 천황 부부는 ‘자서존영’(자필서명한 사진)과 선물을 교환했다.

노 대통령 부부는 백자 사면합 1쌍을 선물했고, 아키히토 천황 부부는 노 대통령에게 절체상각 도자기 ‘수채’를, 권양숙(權良淑) 여사에게는 심금 보석함 ‘자양화’를 각각 선물했다.

○…노 대통령과 부인 권 여사는 이날 오후 1시50분경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전용기 편으로 일본 하네다(羽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조세형(趙世衡) 주일대사가 맨 먼저 기내에 올라가 노 대통령을 영접했고,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 등 일본 정부 인사들은 트랩 아래에서 노 대통령을 맞았다.

○…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맞아 일본 경찰은 9000여명의 경찰을 숙소인 영빈관과 황궁, 한국대사관 주변에 배치해 경계를 강화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노 대통령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지 않은 최초의 전후세대 대통령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노 대통령의 방일이 북한 핵문제에 대한 공동대처는 물론 동아시아 미래를 위해 양국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공영방송인 NHK는 영빈관의 공식환영식과 천황 주최 국빈만찬을 생중계했다.

○…일본 언론들은 6일 아키히토 천황이 일본을 국빈 방문한 노 대통령을 위해 베푼 만찬에서 일제 식민 통치 등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을 부각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인터넷판에서 천황은 지금까지 일본을 방문한 한국의 역대 대통령 4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과의 만찬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일본의 과거 가해행위에 대해 언급했으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 같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대통령도 만찬 연설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등 과거 역사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라고 지적했다.

NHK도 노 대통령과 천황의 이번 만찬은 두 사람 모두 과거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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