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책보좌관인가, 정치연락관인가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27분


청와대는 3월 각 부처에 장관 정책보좌관을 두기로 하면서 이들의 정책기능을 강조했다.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은 이들이 ‘장관의 정책 기획 및 집행을 보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사 뚜껑이 열리면서 ‘정책 보좌’와는 거리가 먼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나 당초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현재 정책보좌관에 내정돼 중앙인사위원회의 검증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은 16명으로 이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캠프나 지지모임, 민주당에 몸담았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분히 대선 논공행상을 위한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냄새가 난다. 노 대통령이나 집권측은 선거 때 빚을 졌다는 생각에서 그런 인사를 하기로 했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공직사회 안에서는 청와대가 정책보좌관을 통해 장관을 감시하고 부처를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공직사회 속성상 부처에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힘이 그쪽으로 몰리면서 공식라인이 흔들리고 조직 내부의 갈등과 혼선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쉽다. 장관들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각의 기능은 위축되고 책임총리제도 빈말이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일부 부처에서는 정책보좌관 내정자 신분으로 벌써부터 인사 등에 간여하고 있다고 하니 공식 임명되면 얼마나 더 ‘시어머니’ 노릇을 할지 우려된다. 해당 부처 업무에 전문성도 경험도 없는 인사가 국정을 얼마나 흐트러뜨릴지도 걱정스럽다.

장관 정책보좌관제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와도 배치된다. 각 부처에서는 현재도 차관과 차관보가 장관의 정책결정을 보좌하고 있고 2, 3명의 비서관도 있다. 일부 장관들은 산하연구기관에 자문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책보좌관까지 생기면 조직은 비대화되고 업무 영역도 모호해져 행정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제라도 장관 정책보좌관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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