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경추위 파행 배경]北 ‘재난 발언’ 약속깨고 공개

  • 입력 2003년 5월 21일 01시 42분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당국이 처음 만난 제5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전체회의에서 양측은 북한 핵문제와 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이에 따라 첫날 회담은 감정의 골만 확인한 채 파행으로 끝났다.

20일 오전 10시부터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열린 첫 전체회의에서 양측은 수석대표 기조발언에서부터 적지 않은 시각차를 드러냈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광림(金光琳) 재정경제부 차관은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남북관계 기조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만 남북간 경제협력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지 않아야 한다”며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수석대표는 또 “북측에서 요구하는 쌀 지원문제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북측 주민들에게 직접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분배의 투명성’도 강조했다.

문제의 ‘재난’ 운운 발언은 북측 수석대표인 박창련 국가계획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기조발언에서 나왔다. 박 수석대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거론한 뒤 “남측이 대결의 방향으로 나간다면 북남관계는 영(零)이 될 것”이라며 “남측이 핵문제요, 추가적인 조치요 하면서 대결방향으로 나간다면 남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남측이 한미 공동성명에서 밝힌 내용은 6·15공동선언의 근본정신에 배치되는 신의 없는 태도”라며 “이런 남측의 처사는 미국의 군사·경제적 압살정책에 적극 편승한 온당치 못한 행동”이라고 몰아붙였다. 북측의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뒤 회담장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논의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회담은 일단 정회됐다. 그러나 양측은 기조발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해 이 같은 상황은 한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상황이 급물살을 탄 것은 이날 오후 북한이 ‘기조발언 비공개 합의’를 깨고 평양방송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박 수석대표 발언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남측의 김 수석대표는 오후 6시반경 북측 박 수석대표와 만나 우리측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경협을 증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점을 상기시킨 뒤 “북측의 발언은 이 같은 성의에 악의로 대하는 것”이라고 엄중 항의했다. 또 ‘문제 발언’에 대한 북측의 성의있는 답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수석대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추가조치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되받아치는 등 오히려 역공을 폈다.

남북 양측은 구체적인 후속일정을 잡지 못한 채 연락관 접촉을 통해 다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18분 만에 헤어졌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평양=공동취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