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투자가들이 본 北核과 한국경제]"금융불안 호전기미 없어"

  • 입력 2003년 3월 10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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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외국인 투자자들은 북한의 전략을 ‘위험스러운 방식을 통한 능란한 협상전략’이라고 정의한 바클레이즈캐피털의 도미니크 드워프레코트 박사의 분석에 대체로 공감했다.

미국을 자극해 반응을 끌어내려 하지만 전쟁은 피하려 한다는 것.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전 준비 기간을 기회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두 개 지역에서 동시 전쟁 수행을 피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11년간 한국 등 아시아지역을 연구한 바 있는 그는 다른 투자은행들의 분석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한반도문제 권위자이다. 그는 알바니아 재무장관 자문역도 역임한 이행경제(사회주의→자본주의) 전문가다.

▽이라크전 이전에 협상 어렵다〓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북핵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 힘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전에서 승기를 잡을 때까지는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양쪽은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시작하고자 하는데 이라크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이 동아시아지역에 군사적 물리력을 대거 동원하기 어렵다.”(드워프레코트 박사)

모건스탠리 아시아 리서치 담당 앤디 시에 박사는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이 점에 동의하면서 “북한의 무기 개발 수준이 이라크보다 높기 때문에 이라크전 발발 이전에 미국이 북한과 타협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핵보유 가능성 높고, 전쟁 가능성 낮아=드워프레코트 박사는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계속 도발 수준을 높일 것”이라며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고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에 박사는 “북한 핵문제는 북한이 붕괴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정치 경제적으로 충분히 지원하면 잠복되겠지만 재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전문가는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해도 미국이 쓸 수 있는 제재 수단은 한정됐다고 분석했다. 무력 공격은 한반도에 전쟁을 가져오기 때문에 가능성이 적고, 경제적 제재는 유엔 안보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해 현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전쟁으로 한반도 남쪽에서만 100만명이 넘는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권위와 영향력은 치유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이 틈을 타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살로먼스미스바니가 작성한 보고서는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면서도 “하지만 외교적 해결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가 하락 원인, 북핵인가 나스닥인가〓주가 환율 외평채 등 한국 경제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는 3월2일 북한 전투기의 미 정찰기 근접사건 발생 후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최근까지 안정세를 유지해온 외평채 가산금리(미국 재무부 채권과의 차이)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고 원화가치도 빠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북핵 이슈가 시장 악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미국 나스닥 지수와 연관돼 있다. 미국 나스닥 지수가 한껏 회복되었던 작년 11월 한국 증권거래소 지수도 고점에 달했다.”(드워프레코트 박사)

“작년에 한국 시장에 과도하게 투자한 것을 북핵을 핑계로 빼고 있는 것”(시에 박사)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불안한 국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북핵이 한국 경제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금융시장 왜 불안한가=국제경제 전문가들이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데도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이유는 “한국 시장은 외국인이 투자하는 수많은 국가 중 하나일 뿐이고 국내 투자의 비중이 낮기 때문”(외국계 투자은행 한국인 이사)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5일 현재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 자금은 79조원. 이중 13%인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면 환율 상승에 따른 추가 부담 없이 달러로 바꿀 수 있도록 헤지되어 있다. 최근 이것이 늘어나는 기미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근본적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는 않다는 뜻.

하지만 “투자 금액 중 5%만 다른 지역으로 바꿔도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심각한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한은 관계자)

실제 메릴린치는 6일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비중을 ‘축소’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향후 전망=세계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6일 “한국 국가신용등급(A-·안정적)을 유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유는 “외환보유액과 재정 여력이 충분해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북핵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않으면 상황이 나빠질 것은 분명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디스처럼 신용등급 전망을 내릴 수도 있다.

한국의 신용등급에 대해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존 체임버스 S&P 전무는 “향후 어떻게 될지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가와 S&P 아시아지역 신용등급 담당이사도 “북핵 이슈의 진전에 따라 신용등급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핵 문제와 이라크전 진전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꽤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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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체제붕괴 예상보다 빠를수도…"▼

“북한의 경제개혁이 실패해 급격한 정치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의 통일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올 수 있다.”(바클레이즈캐피털 도미니크 드워프레코트 박사)

“한국이 직면한 실질적인 리스크는 북한의 핵개발보다는 북한경제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HSBC증권 마이클 뉴턴 아시아담당 이코노미스트)

북한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어 정치적 격변과 함께 남북통일이 뜻하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는 의견이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남한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어 남한경제에 상당한 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과거 28개 동유럽국가의 체제붕괴를 토대로 한국의 통일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그대로 둔 채 경제개혁을 시도해 실패로 끝났다”고 진단했다. 외국의 민간자선단체에서는 경제침체로 95년 이후 150만∼300만명(북한인구의 7.5∼15%)이 굶어죽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HSBC증권 뉴턴 연구원은 “북한의 경제상황은 예전보다 훨씬 심각하며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시위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불가침조약을 얻어내고 이를 통해 군대를 축소하고 자원을 경제영역으로 돌리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핵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특히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한반도의 통일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동유럽국가의 예를 볼 때 경제침체는 내부의 정치적 변혁을 가져오는데 북한은 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어 정치변혁은 북한군부 또는 정권내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뉴턴 연구원도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맺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북한은 군사력을 줄이게 되고 이는 북한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체제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며 단기간 내 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남한이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뉴턴 연구원은 통일 첫해 남한이 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통일비용은 236억달러(2003년 예상 GDP의 4.4%), 다음해는 420억달러(〃 7.8%)로 추정했다.

드워프레코트 박사는 “북한의 경제수용능력을 감안할 때 남한 연간 GDP의 5%가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국제경제연구소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한국경제는 북한붕괴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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