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5억 北에 갔다]한나라 "6억달러 송금 제보입수"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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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大의문 제기▼

한나라당은 30일 현대의 대북 비밀지원 의혹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선 추가로 규명할 쟁점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2240억원이 북한에 지원됐다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다는 주장이었다.

▽청와대, 사전에 알았나 몰랐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정점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이끌어온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문화관광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 통일외교안보특보(당시 국정원장) 등 정권 수뇌부가 현대의 대북 비밀 지원을 알고 있었는지, 만약 이에 개입했다면 그 수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밝혀내는 게 의혹을 푸는 핵심열쇠라고 한나라당은 지적했다.

특히 김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청와대가 현대에 모종의 압력을 가했는지 여부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 이번 사안은 현대의 ‘단독작품’으로 보기가 어려운 만큼 박 실장과 임 특보가 적어도 대북지원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이 경우 당연히 김 대통령도 알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남북정상회담 성사용인가, 대북사업 지원용인가=청와대의 개입 여부가 밝혀지면 비밀지원금의 사용 목적은 자연스레 입증될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번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던 엄호성(嚴虎聲) 의원은 “대북사업은 정권초기부터 시작됐다. 현대가 대북사업 독점권의 대가로 돈을 줬다면 정권 시작 때 줬어야지, 왜 하필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느냐”며 “정상적인 남북경협 절차와 달리 통일부의 승인을 얻지 않은 것도 목적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대북 송금규모는=현대상선이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235억원이 북한에 건네졌다는 것까지만 확인됐지만, 한나라당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대북송금액은 총 6억달러에 달한다는 제보가 있다. 송금 채널은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현대의 다른 계열사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헌(李性憲) 의원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 기간 중 “현대뿐 아니라 일부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송금이 이뤄진 것 같다”고 주장했었다.

▽국정원, 어디까지 개입했나=여권 고위관계자의 말대로 국정원이 현대의 대북송금에 편의를 제공했다면 이는 청와대의 개입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제공한 ‘편의’는 무엇일까. 한나라당은 현대의 돈이 국정원 계좌를 통해 ‘돈세탁’ 절차를 거친 뒤 해외에서 달러벌이를 하는 북한사업체로 갔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물론 현대의 해외계열사들이 달러로 바꿔 북한에 송금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정치권 반응…청와대 "盧측 수사입장 뭔가" 촉각▼

30일 현대상선의 2235억원 대북송금설이 사실로 드러나자 청와대를 비롯해 대통령직인수위,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가정보원 등은 사건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유불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청와대 주요 관계자들은 이날 늦게까지 대기하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송금 인정 발언이 미칠 파장을 점검했다. 청와대측은 이 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김 대통령의 언급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관계자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요청을 국민이 납득하겠느냐, 검찰이 수사를 할 것 같으냐. 검찰 수사 문제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당선자 쪽의 생각은 어떤 것 같으냐”고 물으며 여론을 탐문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번 파문으로 김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워온 햇볕정책의 정당성이 크게 훼손될 것 같다는 우려와 함께 “이래저래 유종의 미를 거두기는 어렵게 된 것 같다”는 탄식이 나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새 정부 출범 전) 털어내야 할 것은 털어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정순균(鄭順均) 인수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인수위가 김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어보인다”며 일단 유보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다른 인수위 관계자는 “설 연휴 직전 김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 형식으로 대북송금을 시인해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보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날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현대상선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일부 인수위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이 제기한 국정조사와 특검이 관철될지도 모른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분위기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이날 정형근(鄭亨根) 의원을 긴급히 불러 진위 파악에 나서는 한편,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과 최고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국정조사와 특검제 관찰방안 등을 논의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정권은 철저히 기획된 일련의 은폐공작으로 엄청난 의혹사건을 덮으려 하고 있고 현 정권과 노 당선자측이 사전교감 하에 적당히 넘어가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통해 이 사건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철저한 검찰 조사를 촉구하면서도 김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은 “현대상선의 돈이 남북경협자금으로 쓰였다 하더라도 국민적 의혹이 비등한 만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의혹을 밝혀야 할 것이다. 책임을 묻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의 국정조사 및 특검제 요구와 관련, “우선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미진하면 그때 가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재정(李在禎)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국민적 의혹을 철저히 밝히되,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지원이 사실이라면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측은 일관되게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대북송금에 관여한 사실은 없다”며 “혹시 국정원 관계자가 사적으로 개입했는지는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수사땐 정치-외교 파장… 종결땐 여론반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현대상선의 대출금 2235억원이 대북 관련 사업자금으로 사용됐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30일 “사법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판단해야지 대통령 혼자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은 국민과 국회의 사전 동의 없이 정권 차원에서 독단적으로 결정된 위헌적인 것으로 김 대통령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이번 사안은 국민 동의 없이 세금이 북한으로 지원된 것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나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법대 성낙인(成樂寅·헌법학) 교수는 “현대상선이 무슨 명목의 돈을 어떤 방법으로 북한에 전달했는지, 그 과정에 정부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먼저 밝혀져야 사법심사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선수(金善洙) 사무총장은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되려면 실정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야 하는데 단지 돈을 준 사실만으로 어떤 처벌이 가능한지 현재로는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관련자 15명을 출국금지하고 이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 준비에 들어갔던 검찰은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수사 방향을 논의하는 등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대북 지원 의혹의 실체 규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검찰은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의혹의 핵심이던 대출금의 사용처에 대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에서 검찰의 ‘역할’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이번 발표로 대출금 사용처 규명에 관한 한 검찰의 부담이 상당히 줄었다”면서도 “수사로 진상규명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설 연휴 이후 수사 방향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감사원 발표 내용과는 별도로 실체 규명을 위한 본격 수사에 착수하는 방안과 김 대통령이 사실상 ‘통치행위’라고 밝힌 만큼 수사를 종결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북한에 송금된 돈의 구체적인 사용처와 대출 경위 등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할 경우 수사 진행상황에 따라 정치 외교적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사 종결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한나라당이 특별검사제 도입이나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는 등 강한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 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이 아닌 ‘통치행위’인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현대상선의 대출 경위와 대북 송금 과정 등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위한 검찰 수사는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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