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核동결 해제 착수]北 "美 핵협상 나서라" 압박 시위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8시 50분


외교통상부 천영우 국제기구 정책관과 심윤조 북미국장이 북한의 영변 원자력발전소 감시장치 제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승기자
외교통상부 천영우 국제기구 정책관과 심윤조 북미국장이 북한의 영변 원자력발전소 감시장치 제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승기자
북한의 5㎿급 원자로 봉인 해제와 감시카메라 무력화 조치는 핵동결 해제 선언이 결코 엄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선 핵개발 포기, 후 대화’ 방침을 고수하면서 외교적 압박을 가할 경우 단계적으로 핵동결 해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봉인한 폐연료봉 8000여개의 봉인을 뜯는다면 제2의 핵위기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22일 “북한은 나름대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단계적 시나리오를 준비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반응이 없으면 더 강한 조치로 옮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원자로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은 전력난 해소.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핵시설을 동결하면서 대체에너지로 중유를 공급받기로 약속했는데 미국이 중유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핵동결을 해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봉인 해제와 감시카메라 제거의 시급성을 강조했으나 시간을 끌어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력난 해소를 외치지만 실제 목적은 앞으로 있을 북-미 협상을 겨냥한 대미 시위성 압박성 카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보통 소형 화력발전소 1개가 수십만㎾ 규모인데 영변의 5㎿급 원자로는 실제 가동에 들어가더라도 디젤 발전기 발전량인 5000㎾ 정도만 생산할 수 있다”며 “송배전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영변 일대에만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북한이 처한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얘기다.

또한 북한의 핵시설이 94년 핵동결 이전에 핵무기 개발에 이용된 바 있어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핵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생산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이 핵동결 해제에 착수했지만 당장 강수를 두기보다는 당분간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21일 5㎿급 원자로의 봉인을 해제하면서 몰래 하지 않고 영변에 상주 중인 IAEA 사찰관 2명을 불러 작업 과정을 직접 지켜보게 한 것도 핵동결 해제가 곧 핵개발 재개가 아님을 강조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서주석(徐柱錫)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1, 2개월이 걸리는 5㎿급 원자로 가동준비를 하면서 중단된 50㎿급과 200㎿급 원자로 건설을 재개하는 등의 조치를 밟아나갈 것”이라며 “그러나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폐연료봉 8000여개의 봉인을 뜯어내는 조치는 핵위기가 고조된 최악의 상황에서나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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