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공약으로 본 盧당선자 국정방향

  • 입력 2002년 12월 20일 01시 55분


▼권력문제▼

노무현 정부의 임기 5년 동안 최대 화두는 개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노 당선자는 2004년 17대 국회가 구성되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고, 개헌이 현실화되면 현재의 권력구조는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물론 정 대표의 공조 파기로 개헌의 실현 여부나 개헌의 내용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개헌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부 하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노 당선자는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각료 제청권을 행사하는 책임총리제를 약속했고, 그에 따라 국정 수행에 있어 총리가 상당한 권력을 갖게 되는 정부 운용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기존의 권력 핵심기관도 커다란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국정원을 해외정보만을 수집 분석하는 해외정보처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집권 초기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작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앞으로 5년간 한시적으로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하고,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한다는 방침이어서 그동안 최고사정기관의 위치를 누려왔던 검찰의 위상은 급속하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다 노 당선자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긍정적인 입장이어서 일반 형사사건의 처리권한이 경찰에 넘어갈 경우 검찰은 기소권 행사와 공소유지 업무만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노 당선자는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권력 핵심기관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공약했기 때문에 이 공약이 제도화하면 이들 기관의 독립성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남북문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제2의 핵 위기를 맞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주변 4강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 당선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출된 남북 및 남남 갈등의 문제점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대북정책 추진 내용을 국민과 야당에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초당적 기구나 제도적 틀을 만들 계획이다. 남남 갈등이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다. 그는 또 “(햇볕정책과 달리) 남북문제를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확대하고, 그에 따라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구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기반으로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국가 및 유라시아 물류 기지로 키우면 경제성장률 7%의 ‘지속 가능한’ 고도 성장도 가능하다는 그의 경제 전략과도 직결된다.

이와 관련해 그는 남북정상회담과 정상의 상호 방문을 정례화하면서 동아시아 평화협력체와 경제협력체를 주도적으로 구성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는 전통적인 양국 동맹체제의 틀 안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노 당선자는 그동안 “미국 정책이 한국에 위험하거나 불리하면, 정면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거부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양국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해왔다.

그가 북한의 체제 보장이나 개혁개방 지원에 결정적 힘이 있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그의 대북정책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그의 정치력이 시험받게 될 것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정치개혁▼

노무현 당선자는 지역대결 구도에 의존해온 기존 정당구조의 전면개편을 주장해왔다. 당장 내년 2월말 취임하기 전까지 민주당에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당이 환골탈태하는 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고 말해왔다.

더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부정부패와 실정(失政)에 관련된 인사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혀 동교동계의 2선 후퇴와 당내 개혁세력의 전면 포진을 시사하기도 했다.

나아가 국민과 당원의 뜻이 모아지면 전국 통합정당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아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포함하는 사실상의 정계개편을 추진할 뜻을 비쳤다.

노 당선자의 이러한 정치개혁 구상은 당장 당내의 기득권 세력과 야당의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고 집권 1년 후인 2004년 17대 총선 결과에 따라 크게 좌우될 가능성도 높다.

17대 총선에서 개혁세력이 약진해 정치권의 주류로 자리잡는다면 그의 구상은 한층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기존 정치세력과의 타협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통한 정경유착의 근절이나 상향식 공천 및 국민경선제의 정착을 통한 정당의 민주화 등 제도적인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정파를 떠나 일정한 합의가 이뤄졌으므로 집권 초기에 급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당-정 분리가 실현됨에 따라 국회와 행정부의 관계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통제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자율권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감사원에 대한 감사요청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경제개혁▼

재벌개혁을 줄기차게 강조해 온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집권 초반부터 대기업 정책에서 강공책을 쓸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외환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추진한 재벌개혁 정책을 미완의 과제로 생각하는 노 당선자는 재벌 때문에 경제위기가 왔다는 김 대통령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그는 DJ정권 말기에 들어서며 재계에 밀려 대기업 규제가 느슨해졌다고 강력히 비판해 왔다.

재벌을 개혁과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그의 평소 시각에 비춰볼 때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재계와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 당선자의 경제정책은 ‘시장의 공정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이라는 두 축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에 대한 시장감시라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개혁 성과가 미진하면 채찍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노 정권 출범으로 당장 국회에 계류 중인 증권 집단소송제도가 조기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소송 분야도 증권 이외에 대기업의 영향을 받는 다른 분야에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공조 파기로 인해 정책조율을 거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계열사 상호출자금지 및 빚 보증 금지 등 대기업 규제 부문은 당초 노 당선자 생각대로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몸집이 큰 재벌이 계열 금융회사를 이용해 계열사를 편법으로 지원할 경우 특혜를 주는 계열회사를 아예 그룹에서 떼어내는 ‘계열분리 청구제도’의 도입 시기에 대해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금 정책도 재벌의 특혜 상속과 변칙 증여를 막는 ‘완전 포괄 과세’ 제도 도입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부당한 상속과 증여를 제도적으로 막아 재벌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대물림하는 것을 뿌리뽑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재벌은 강력히 규제하는 반면 벤처기업 등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혜택을 주고 규제도 풀어 선별 지원한다는 양면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사회-복지▼

노무현 시대는 일반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 각 부문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변화의 키워드는 ‘지방화’ 및 ‘복지 확대’다. 노 당선자는 취임 직후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할 예정이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교육의 지방화도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당선자는 “공직 채용시 지방대 출신자에 대한 인재 할당제를 실시하고, 연구개발 예산 중 1조2000억원이 대학으로 지원되는데 그것을 2, 3배 늘려 주로 지방대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는 ‘학벌 사회’를 ‘실력 사회’로 바꾸고 ‘대학 서열화’를 개선하겠다는 노 후보의 철학이 담겨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고교평준화제도는 유지되고 자립형 사립고의 ‘귀족화’를 막기 위한 보완책이 마련되며 실업계 및 농어촌 고등학교에 대한 무상교육도 실시된다.

사법시험 제도와 관련, 노 당선자는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장기적으로 ‘로스쿨 제도’ 도입

및 법조인의 지역 할당제도 적극 검토될 전망이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도 예상된다. 노 당선자는 호주제 폐지를 통해 양성(兩性) 평등화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유아 보육료의 절반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5급 이상 공무원의 여성 비율도 20%로 확대된다.

군 복무기간도 현행 26개월(육군)에서 24개월, 장기적으로 22개월로 단축하는 문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진료비 총액에 대한 상한선제가 도입돼 암을 비롯한 난치병의 중증질환 치료나 고액 진료에 대한 국민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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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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